비서울 메이킹
하자유 작가노트
하자유
비서울 작가
작업실이 광명의 철거지역에 위치하게 되면서 자연스레 동네의 변화를 목격하게 되었다.
철거를 기다리며 비어져 가는 집과 상가, 골목골목 비어있는 공간이 보이는 창문, 그리고 이와 대비되어 광명시장 근처 여전히 복작복작한 사람들, 우거져가는 나무들과 푸른 내음, 해지는 노을에 감싸지는 땅과 하늘, 나는 머지않아 과거로 사라질 이 풍경들을 미리 그리워하게 되었다.
고화질에 화려하고 뚜렷한 사진은 많지만 어딘가 아련한 필름 사진을 좋아한다.
지나가고 사라져가는 장면들을 조금 더 정성을 들여 마주하고 싶은 나의 거추장스러운 마음 때문이다. 작업실을 오고 가며 많은 상상을 했다. 드문드문 모여앉아 어제의 이야기를 꺼내는 사람들, 피아노학원 가방을 들고 가는 아이의 발자국, 그 사이로 들리는 당당하고 씩씩한 건반소리가 들리는 듯 했다.
철거가 되기 한주 전 다시 이곳을 찾았는데 한여름 날씨에 전봇대 아래 잔뜩 버려져있는 제설제를 보았다. 이곳의 겨울은 아주 미끄러워 집집마다 제설제를 잔뜩 구비해 놔야만 하는 곳이었구나, 눈이 펑펑 내리는 날이면 걱정을 잔뜩 안고 잠을 청해야만 했던 얼굴들을 떠올렸다. 비어진 골목, 앞으로의 일들은 모르는 채 여전히 눈을 반짝이는 고양이도 만났다. 내가 잠시 있는 동안에도 계절의 빠르게 흘러가는 변화의 폭을 느꼈다. 하물며 수십년 동안 무수히 쌓였을 나이테는 이제 흩어져 각자의 자리로 날아가 뿌리내리게 될 것이다.
우리는 기억하기 위해 때로는 언어로 문학으로, 때로는 수치화하여 그때를 기억한다.
그러나 우리가 보았던 피어나는 생명력과 새소리, 바람의 감촉, 시시각각 변하는 하늘의 색은 언어만으로 명료화하기 어렵다. 그날의 여러 기억과 장면들은 호흡과 함께 흘러가고 묻혀가고 잊혀진다. 끊임없이 흘러가고 사라지고 또 생겨나는 세상 속에서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소시민들이 살았던 일상 속 감성을, 대체할 수 없는 그 기억을 나의 그림 언어로 보존하고 함께 기억하는 것이다. 나는 같은 동네로, 지역으로, 여러 문화권으로 연결되는 사람들과 우리 삶의 기쁨과 슬픔을 함께하고 싶었다. 동시에 이곳에서의 살아냈고 또 살아가는 수 많은 삶들을 기억하기로 했다. 끝없이 사라지고 변화하고 철거되고 세워지는 것은 건물뿐이 아니다. 우리의 만남도 사건도 나의 시간들도 그렇게 흘러갈 것이다.
언젠가 사라진다는 사실이 지금을 소중하게 만들어 준다는 진리를 다시금 떠올려본다. 결국엔 호흡하는 삶을 살아가는 한 또 다른 순간을 마주하며 다른 곳을 찾아 헤매일 것이다. 나는 어디를 향하고 있으며 우리는 흘러 흘러 어디로 가게 될지 상상해본다. 어디로 가든지 지난 삶을 의미있게 돌아보며, 함께 오늘의 찰나에 머물 수 있는 사람이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