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서울 메이킹

방경지 작가노트


방경지

비서울 작가

20대 중반 대학을 졸업하고 사회에 나오면서 문화예술 기반이 잘 구축된 큰 도시에서 인정받고 싶었다. 

졸업과 동시에 짧은 시간이지만 2년 정도 서울과 고양을 중심으로 일했다. 

나의 존재감을 확인받고 역량을 강화하고 싶었기 때문에, 통근 시간, 업무 형태는 상관없었다. 하지만 경험치가 적고, 속한 기관의 방향성이 있기에 나의 기획을 맡은 프로젝트에 녹이기는 어려웠다. 그래서 나의 조각이 조금이라도 반영되는 프로젝트를 항상 갈망했다. 환경도 환경이지만 다른 창작물에 기대어 2차 저작물만 생산하다 보니 진짜 나의 이야기를 하지 못하고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이러한 나의 욕구는 내 시선을 내가 사는 곳으로 향하게 했다. 대학원과 코로나가 겹치기도 했지만 진짜 나의 이야기를 하려면 나의 주변을 집중하는 것이 옳다고 생각했다. 그렇게 시작하게 된 의정부에서 활동은 가장 자연스럽게 진짜 나의 이야기를 꺼내게 했다. 참고한 창작물도 없었다. 우연히 읽은 황두진 건축가의 칼럼인 「서사를 기획하는 건축가, 시대를 읽는 힘을 말하다.」에서 나는 의정부에서 내 이야기를 자신 있게 할 수 있었던 이유를 깨달았다. 그는 다음과 같이 말했다.


결국 내가 사는 지역이 출발이 될 때 가장 단단한 이야기가 완성되는 게 아닐까. 

가장 자연스러운 건 지역을 배경으로 성장하는 게 아닐까. 

비틀즈가 영국 리버풀의 동네 밴드로 시작했거든요. 거기서 잘하니까 런던, 함부르크를 거쳐 미국까지 진출한 거죠. 

우리도 이제는 자기 지역에서 출발한 성장 이야기들이 나올 거라고 생각하게 됐어요.


그냥 내가 이곳에서 느끼는 나의 이야기를 하니 가장 솔직하고 단단한 이야기를 할 수밖에 없었다. 이러한 활동을 계속 이어가다 보니 결이 맞는 예술가들을 여럿 만나게 되었고 지역에서의 활동 유무와 상관없이 서로에게 버팀목이 되었다. 의정부에서의 활동이 또 다른 기회를 연결해 주는 경우가 많다. 의정부를 중심으로 서울을 오가며 활동 중이다. 나의 동료들도 그렇다. 서울보다 현저히 부족한 기반에 속상했던 시간도 있었지만, 오히려 처음 시도하는 선구자가 되어 응원받는다. 그리고 함께 새로운 프로젝트를 만들어 갈 수 있는 관계들은 이곳에서 더 많이 얻었다. 비(BE)서울, 즉 서울로의 진입을 더 이상 욕심내지 않는다. 비(非)서울이라는 지정학적 위치는 우리의 작업에 큰 영향을 미치지 않기 때문이다.


같은 생각을 공유하고 있는 동료 예술가들의 이야기를 다른 예술가들에게도 공유하고 싶어서 <기꺼이 유영하기>를 작업하게 되었다. 


<기꺼이 유영하기> 는 4명의 예술가와 나눈 전화 통화 내용을 통해 서울과 서울이 아닌 곳을 오고 가며 활동하는 이들의 경험과 이를 통해 얻은 그들의 통찰을 공유하는 작업이다.


방안을 전화 통화의 대상인 예술가들의 아카이브로 채워서 목소리와 더불어 그들의 예술 활동을 더듬어 볼 수 있도록 돕는다. 목소리, 아카이브, 짧은 메모가 뒤섞인 방은 4명의 예술가가 의도적으로 혹은 자연스럽게 감각한 비서울이 예술가로서의 정체성과 작업에 어떻게 공명하는지 전달한다. 그리고 듣는 이로 하여금 서울이 아닌 무언가의 한계를 나의 작업에도 투영하지 말고 마음껏 헤엄칠 것을 제안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