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서울 메이킹
최보윤 작가노트
최보윤
비서울 작가
세상에 떠도는 말은 자기가 현실인 척 합니다.
처음 〈비서울 프로젝트〉의 메이킹 제안서를 보자마자, 비교와 관련된 작업을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서울과 서울이 아닌 곳을 나눌 때 어쩔 수 없이 비교의식이 은은하게 들어가기 때문입니다. 사실 서울은 정말 대단한 도시입니다. 인프라도 좋고 다양한 문화생활도 즐길 수 있고, 또 다양한 회사들이 있는 곳입니다. 그렇다고 해서 서울 이외의 지역은 나쁜가? 라고 생각하면 그런 것도 아닙니다. 하지만 ‘세상에 떠도는 말’은 그렇다고 떠듭니다.
세상에 떠도는 말은 실체가 없고 말로서 관념으로서만 존재하지만, 현실인 체 합니다.
예를 들자면.
‘SKY대학 아닌 이상 그렇게 공부 잘한 거 아니야.’
‘이번에 서울에서 집 못 사면, 서울에 있는 내 집 한 채라는 꿈은 영원히 이룰 수 없어. 지금 들어가야 해.’
어디서 많이 들은 적 있을 것입니다.
SNS를 통해서든 아는 지인을 통해서든, 그럴듯하게 들리고 어디선가 많이 들어 들어 봐서 사실일 것 같지만, 현실이 아닙니다. 특히 두 번 째 말은 많은 청년들이 무리한 빚을 지게 만들기도 했습니다. 그렇다면 현실이 아닌 ‘세상에 떠도는 말’만 계속 좇으면 어떻게 될까요? 높은 확률로 괴로워질 것입니다. 왜냐하면 말뿐인 관념이기 때문에, 그것을 이룬다고 해도 또 다른 관념을 보여줄 것이기 때문입니다.
예를 들어, A라는 사람에게 ‘지방에 오래 있으면 거기서 계속 살 확률이 높아, 누리고 살려면 경기도로 와야지.’라는 말이 들립니다. 그래서 A는 열심히 일해서 경기도로 왔습니다. 하지만 또 어디선가 ‘언제까지 경기도에 붙어있을래. 서울로 와야지.’라는 말을 듣고 빚을 져서 서울에 왔습니다. 하지만 또 이런 소리가 들립니다. ‘강남이 진짜 서울이지, 너는 도봉구랑 강남이 같다고 생각해?’, 이 소리를 듣고 A는 열심히 노력해서 강남으로 이사 갔지만, ‘거기는 진짜 강남이 아니야. 그 동네는 강남치고 급이 좀 떨어지지. 00동 같은 곳이 진짜 강남이지.’라는 말에 사로잡힙니다.
위의 예시처럼 세상에 떠도는 말은 잡더라도 다시 결핍의 상태로 되돌아가게 만듭니다. ‘너가 사는 곳은 진짜 좋은 곳이 아니야. 진짜 좋은 곳은 이런 곳이지. 진짜는 달라.’라며 끝없이 비교하게 만듭니다.
아무리 싫은 곳이라도 작게 잘라 보면 아름다운 구석이 있습니다.
세상에 떠도는 말에 휘둘리지 않으려면, 내가 디디고 서 있는 현실을 미워하지 않고 있는 그대로 관찰해보는 것이 좋습니다. 현실은 지금 내가 있는 시간과 공간이고, 지금 내가 보는 것, 겪는 것입니다. 어디선가 이게 현실이라더라 하면서 떠도는 말이 아닙니다.
제 현실은 광명시의 어떤 조용한 동네입니다.
집에서 가장 작은 방에서 작업하며, 안양천에서 산책을 합니다. 물론 서울의 조용한 동네에서 아주 넓은 작업실에서 작업하고 한강에서 산책하는 것도 좋을 수 있겠지만 이것은 ‘이랬으면 좋겠다-’ 라는 생각이지, 지금 내가 마주하고 있는 나의 현실이 아닙니다. 내 손에 닿지도 않을 생각과 비교하며 내가 살고 있는 곳을 폄하 할 필요는 없습니다. 세상에 떠도는 말을 무시하고, 내가 살고 있는 공간, 내가 경험하고 있는 현실을 유심히 관찰하면 아름다운 구석을 꽤 자주 발견할 수 있습니다. 물론 모든 부분이 아름다운 것은 아니지만, 아무리 싫은 곳이라도 작게 잘라 보면 아름다운 구석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저는 종종 광명에서 아름다운 풍경을 발견합니다.
지나가는 사람, 자주 보던 아파트 때문에 전체 풍경은 조금 미울 수 있지만, 아주 작은 부분에 집중하면 지나치기 힘들 정도로 아름다운 것들이 많습니다. 달빛이 비치지 않는 음력 1일(삭) 즈음, 안양천에 비친 야경의 불빛은 더 찬란하게 보입니다. 반대로 달빛이 가장 빛나는 음력 15일(망) 밤에 안양천에 가 보면 달빛을 받은 예쁜 꽃과 식물들을 볼 수 있습니다. 또 주말 오전에 조깅을 나가면 새 지저귀는 소리와 안양천을 지키는 턱시도 차림의 터줏대감 고양이를 볼 수 있습니다.
자신이 살고 있는 곳이 최고로 좋은 동네가 아닐 수 있습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그럴 것입니다. 하지만 저는 사람들이 실체 없이 떠도는 말에 휘둘려, 자신이 서있는 공간을 비교하고 미워하며 깎아내리는 것이 아니라, 온전히 그곳을 느껴 봤으면 좋겠습니다.
이번 작업의 소스는 광명시
이번 작업에는 2022년부터 찍어온 광명시의 영상들을 소스로 사용했습니다.
제가 광명시에서 살면서 아름답다고 느낀 부분을 찍은 것들인데 이번 작업에 사용하게 되어 기쁩니다. 또 소스 중 광명시에서 유명한 것들은 뺐습니다.(ex. 이케아, 코스트코, 광명동굴) 대신 좀 더 일상적인 느낌을 주기 위해 풍경 위주로 사용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