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서울 인터뷰
지방에서 네다섯 시간 버스를 타고
서울로 와 레슨을 받던 시절을 거쳐,
가야금 연주자가 되었다.
나는 1993년생,
광명에 사는 가야금 연주자 추현탁입니다.
추현탁
광명 거주 가야금 연주자
중학생때까지 전라북도 정읍에 살았어요.
어릴 때부터 음악에 관심이 많아서 피아노도 배우고 드럼도 쳤었죠. 정읍에 살던 시절, 여동생이 가야금을 배우더라고요. 악기를 사달라고 하더니 결국 부모님께서 마련해 주셨거든요. 동생이 집에서 가야금 연주하는 모습을 보고 굉장히 매력적인 악기인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런데 동생은 가야금을 사고 일주일 정도 연주하더니 흥미를 잃어서 제가 연주해달라고 해도 안 해주는 거에요. 그래서 제가 직접 연주를 해보다가 가야금에 빠지게 되었죠.
전라북도 정읍에 있는 가야금 학원에 다니면서 전주예고에 진학할 생각이었어요. 그런데 가능하면 서울 쪽으로 가서 배우고 싶어지더라고요. 해서 따로 레슨도 받고, 공부하면서 예고 입시준비를 했죠. 수도권에는 양재의 국립국악고등학교, 그리고 시흥에 있는 국립전통예술고등학교 이렇게 두 개의 국악고등학교가 있어요. 저는 국립전통예술고등학교를 다니면서 시흥에서 기숙사 생활을 하고 자취도 하면서 지냈어요.
2016년 대학 졸업 이후로는 타 대학 분들과 협업을 하기도 하고 반주자로 활동하면서 독주 공연도 했죠. 지금은 대학원에 진학해 논문을 쓰고 있어요. 정신이 하나도 없어요. (웃음)
주로 활동하는 시흥의 국립전통예술원까지 15분 밖에 걸리지 않아서 광명에 살기로 결정했어요.
대학원까지도 내부 순환로가 뚫려 있어서 금방 가고요. 광명은 교통이 편리하다는 것이 큰 장점이에요. 100% 제가 원하는 곳에 사는 건 아니지만 그럼에도 살기 좋은 동네라는 생각이 들어요. 요즘 일이 많아서 아침 일찍 집을 나섰다가 새벽이 다 되어 들어오다 보니 동네를 돌아다닐 일이 거의 없는데 가끔 광명시민체육관에 산책 나가면 참 좋더라고요. 광명보건소 근처인데 시설이 아주 잘 되어 있어요. 주민들도 운동하러 많이 오고요.
광명과 서울의 차이는 아직 잘 못 느껴요. 제게 집은 거의 자는 곳이고 일찍 나가서 늦게 돌아와서 그럴지도 모르겠네요.
지역에 예술고등학교가 들어서면 그 일대에 변화가 생기는 것 같아요.
시흥에 국립전통예술고등학교가 있다 보니 그 주변으로 작지만 공연장이 몇개 있어요.
레슨도 많이 진행되고요. 예술학교가 지역에 들어서는 것은 좋은 일인 듯 싶어요. 그런데 국립국악고등학교가 있는 양재는 학생들이 졸업 이후에도 학교 인근에 살거나 근처로 연습실을 얻어서 많이들 모여 지내는데 제 모교가 있는 시흥은 졸업 이후에 학생들이 뿔뿔이 흩어져서 잘 모이지 않아요. 자세한 내막은 모르지만 생각보다 학교 주변에 지인들이 많지 않더라고요. 국립전통예술고에 진학하는 친구들이 아무래도 지방에서 올라온 경우가 많고 본가가 먼 친구들이 대부분이라 졸업 후에 활동 기회가 많은 서울로 이동하거나 본가로 돌아가다 보니 이 같은 현상이 생긴 게 아닌가 싶어요.
전통음악집단 ‘샛’이라는 팀에 속해 있어요.
‘샛노랗다, 새하얗다.’ 할 때의 그 ‘샛’이에요.
짙고 선명하다는 뜻이죠. 전통 음악을 집중적으로 하는 팀이에요. 저를 제외한 팀원들은 모두 한예종 출신이고요. 특히 경기 민요, 서도 민요, 남도 민요, 이렇게 지역 특색이 살아있는 전통음악을 중점적으로 다루는 팀이에요. 팀원 중, 해금 연주자 분과 인연이 닿아서 친분을 쌓다 보니 그 분의 졸업 연주를 도와주게 되었고 그 연주를 함께한 사람들과도 친해지면서 ‘우리 한 번 팀을 꾸려보자.’ 이렇게 시작됐어요. 악기는 가야금, 장구, 대금, 피리, 해금, 아쟁 이렇게 여섯 종류로 구성돼 있고요.
가끔 무용 반주도 하는데 전통무용에 쓰이는 반주 음악에 주로 가야금이 사용돼요. 또 민요 반주를 할 때라든지 반주 악기가 필요할 때, 반주자 역할로서 무대에 서는 일도 많다 보니 연습이 많이 잡혀 있어요. 전통에 집중해서 활동하는 팀에 속해 있기도 하고 저라는 사람이 전통을 계승하는 작업을 좋아하고 공부를 이어가고 있다 보니 소문이 나거나 추천을 받아서 따로 연락이 오는 식으로 작업이 시작되는 편이에요.
가야금 연주자가 된다는 것은 차근차근 한 단계씩 올라가는 심정으로 배워 나가는 일 같아요.
‘이 사람은 전문 연주자가 맞다, 이 사람은 아니다.’ 이런 식으로 구분하기는 어려울 것 같아요.
대학을 졸업한 이후에도 꾸준히 공부하고 연습하면서 인정받고 있는 사람이라면 전문 연주자라고 할 수 있지 않을까요? 활동을 계속 이어 가면서 자기만의 음악을 구축해가는 분들이요. 때문에 저는 그저 내 음악활동을 하면서 공부하고 아이들도 가르치고 동시에 연주활동을 하면서 하나씩 차근차근 배워가는 과정에 있는 연주자 같아요.
요즘은 레슨을 많이 하고 있어요.
레슨을 하는 동시에 예고에 강의도 나가고 있고요. 가야금을 전공하는 학생들 레슨을 주 2회에서 3회 정도 하고 주말마다 지방에서 올라오는 친구들도 봐주고 있어요. 수도권에 사는 친구들도 있지만 가야금을 배우려고 지방에서 올라오는 친구들도 많아요. 충남 보령에서 오는 친구도 있고, 제 스승이었던 정읍의 선생님과 연이 닿아 정읍에서 올라오는 학생도 있고요. 남원에서 오는 친구도 있네요. 그 아이들은 주말마다 KTX나 버스를 타고 두세 시간씩 걸려서 서울로 오는 거죠.
저도 정읍에 살 때 시창 청음을 배워야 해서 서울대 재학생 선생님에게 배우면서 입시 준비를 했었어요. 전남 광주에서 서울대학교까지 네 시간, 다섯 시간이 걸리거든요. 그러니까 네다섯 시간 차 타고 서울로 가서 1시간 레슨받고 네 시간 걸려서 다시 정읍으로 돌아오는 거예요. 그러면 하루가 다 가죠. 그땐 어려서 그랬는지 당연한 거려니, 했던 것 같아요.
논문이 끝나는 시점부터는 조금 덜어내고 살아볼까 생각 중이에요.
시흥에 살 때는 안양천이 집 근처라 저녁 일과가 끝나면 자전거 타러 훌쩍 나가곤 했어요.
그 당시에는 지금보다 좀 더 여유가 있었는데 요즘은 전혀 그렇지 못한 기분이에요. 사람들에게 도움이 되는 것도 좋고 바쁘다는 것 자체도 감사한 일이지만 흘러가는 대로, 목적 없이 살아지는 대로 살면 안 되니까요. 내가 진심으로 추구하는 게 무엇인지 한 번 더 생각해 보는 시간을 가질 때가 된 것 같아요.
되려 광명에 사는 것이 서울에서 사는 경우보다 주거 면에서 괜찮은 부분이 있어요.
차가 있으니 서울로의 접근성이라는 점에선 전혀 어려움이 없어요.
광명도 집값이 아주 싸지는 않지만 그래도 차가 있다면 서울 접근성도 좋으면서 서울보다 좀 더 쾌적한 환경에서 지낼 수 있는 거죠. 오히려 서울보다 좀 더 사람 사는 냄새가 나는 동네구나 싶어요. 살갑달까요? 집 앞에 놀이터가 있는데 제가 오전 11시쯤 산책을 나가면 놀이터에 유치원생들이 한 가득이에요. 큰 유치원 다니는 아이들은 유치원 내에 있는 놀이터에서 노는데 작은 유치원 아이들은 공공놀이터에 소풍 가듯이 다같이 나와 놀더라고요. 아이들이 서로 손잡고 줄 지어서 놀이터에 들어가서 노는 걸 보면 너무 귀엽고 지켜보는 것만으로도 기분이 좋아져요.
광명에 문화적 인프라가 지금보다 더 많아졌으면 좋겠어요.
청년예술가들을 위한 축제를 연다든지 문화 사업을 해서 네트워크가 형성될 수 있는 프로그램이 많아졌으면 해요.
다양한 활동이 벌어지고 홍보도 잘 됐으면 좋겠는데 열심히 찾아보지 않는 이상 대부분 모르고 있다는 느낌이 들거든요. 공연 관련해서는 지원 사업이 더 많이 있으면 좋겠고 다양한 예술가들과 장르를 넘나드는 소통을 할 수 있는 장도 생기면 좋겠어요. 그리고 그런 것들의 홍보가 더 잘 이루어지길 바라고요. 이미 있다고 해도 저는 거의 접하지 못했으니까요. 근처에 사는 친구가 없어서 하루를 마무리하면서 같이 맥주 한잔하고 싶어도 그렇게 하지 못해요. 예술하는 친구들이나 일반인이라도 동네에 아는 사람이 있으면 광명에서 지내기가 더 즐거울 것 같아요.
아직 광명에서 지원사업을 해 본 경험은 없어요.
고양이나 인천지역의 지원사업 경험은 있는데 광명에서 경험한 지원사업은 없네요.
국악 분야는 지원 사업도 많고 활동에 필요한 부분마다 다양한 지원이 마련되어 있어서 감사하게도 공연을 많이 할 수 있었어요. 최근에는 서울이나 부산에서 공연을 하기도 하고 보령이나 전주 같은 지역에서 초청받아 공연을 하기도 했고요. 광명의 집 근처에서 공연을 하면 색다를 것 같다는 느낌이 들어요. 아직 광명 어디에 공연장이 있는지도 정확하게 모르지만요. 집에서 걸어갈 수 있는 곳에서 공연을 하게 되면 기분이 묘할 것 같네요.
‘전통음악의 대중화에 힘쓰는 교육이냐, 음악 자체에 전념할 것이냐.’이 두 갈림길 사이에서 고민했어요.
서울의 초등학교에서 아이들에게 전통음악 들려주는 사업을 진행한 적 있어요. 대부분의 초등학생들이 전통악기를 실물로 보는 게 처음이니까 많이 신기해하고 관심도도 높아요. 저는 전통을 하는 사람으로서 전통을 계속 살려 나가려면 어렸을 때부터 자연스럽게 전통예술을 접할 수 있는 환경이 조성되는 게 중요하다고 봐요. 사업을 진행하면서 아이들과 함께 다양한 활동을 하고 자료도 열심히 보여주었죠.
전통예술은 아직 대중들에게 쉽게 다가서기 위한 노력을 많이 해야 된다고 생각해요. 그런 방면으로 노력하는 전통예술가가 있다면 또 전통을 지키고 공부하는 방향에 집중하는 사람도 필요하죠. 해서 고민이 많은 시기에요. 나는 어느 쪽으로 갈 것인가에 대해서요. ‘교육이냐, 전통음악에 몰두할 것이냐.’ 이 두 갈래의 길 사이에서 고민이 진행중인데 어느 정도는 음악에 집중하는 연주자로 길을 정하려는 마음이 섰어요.
지금 사는 광명지역을 모티브로 작품을 만든다면 여유있고, 한적하고, 편안한 음악이 나오지 않을까 싶어요.
예술하는 사람들, 특히 연주하는 분들은 사람들이 퇴근한 이후의 저녁시간이 오히려 바빠요.
오전에 공연 일정이 잡히는 경우도 있지만 보통은 일반 직장인들과 정 반대의 스케쥴이죠. 그러다 보니 사람들이 한창 바쁠 시간대에 여유로울 때가 많으니까 저는 그게 좋더라고요. 사람들이 출근한 시간대에는 어딜 가도 한적하니까요. 그런 분위기를 살린 음악을 만들 것 같아요.
나의 하루는 이래요.
오늘 하루 일과를 말해 볼게요. 7시에 일어나자마자 바로 씻고 나와서 8시부터 레슨 시작, 한 7시간 정도 레슨을 했어요. 오늘은 지방에서 올라오는 아이들과 인근에 사는 아이들 레슨을 진행했고요. 총 4명 레슨을 한 거죠. 내일 국립국악원에서 가야금 협회 공연이 있어서 저녁 6시에 연습 스케쥴이 있어요. 그 이후에는 고3학 학생들의 서울대, 한예종 입시가 코앞이라 그 입시생들 레슨을 해야 해요. 그러면 아마 오후 10시나 11시쯤 모든 일이 끝날 것 같아요.
레슨이 끝나면 논문을 써야 해요. 피드백 받은 것들을 수정해서 10월 중순쯤 에는 논문 중간발표를 해야 하거든요. 요즘은 광명에 있는 스터디 카페에서 논문작업을 해요. 보통 새벽 3시 정도까지 하고요. 내일은 다행히 오전 9시부터 레슨이 있어서 8시에 일어나면 돼요. 매일같이 이렇게 많은 레슨을 하진 않는데 지금이 입시철이라 유난히 바쁜 시기에요.
마치 이상향 같은, 나의 예술로 꾸는 꿈이 있어요.
제가 한 80살 정도가 되었을 때 ‘악, 가, 무’를 다 배워서 공연을 올리고 싶어요.
‘악, 가, 무’라는 것이 무엇이냐면 ‘악’은 악기, ‘가’는 노래, ‘무’는 무용이에요. 예로부터 국악은 요즘처럼 세분화된 전공으로 나뉘어 있지 않았어요. 옛 선생님들을 보면 다들 춤을 추시다가 노래도 하시고 악기를 연주하기도 하는 등, 종합적인 전통예술을 하셨죠. 전 그게 너무 멋있는 거예요. 원래 그 모든 것을 하나라고 여겼다는 뜻이고 이런 옛 방식으로 전통 음악을 흡수했을 때에야 비로소 좀 더 본질에 가까운 무언가 가 채워지지 않을까 생각해요.
해서 제가 딱 80살이 되었을 때 큰 공연장에서 소리도 하고, 악기도 하다가, 춤도 추는 공연을 하고 싶다는 꿈을 갖게 되었어요. 왜 하필 80살이냐면 그 나이까지는 해야 완성까지는 아니더라도 인정은 받을 수 있지 않을까 싶어서에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