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서울 인터뷰

지역 살며 자연인으로서의

내 삶이 변화했다는 것을 느낀다.

나는 1989년생,
천안 아산에 사는 사운드아티스트 전우진입니다.


전우진

천안 아산 거주 사운드 아티스트

천안에 살게 된 계기는 결혼을 결심하면서에요. 

그 당시 3년 정도 사귀던 여자친구가 있었어요. 


예술하는 사람들은 결혼 얘기를 먼저 꺼내기가 쉽지 않죠. 제 상황을 객관적으로 파악했을 때 결혼은 이르다고 생각했는데 공기관에 다니던 여자친구가 충남에 발령을 받으면서 결혼하자는 말을 먼저 꺼내 주었어요. 저는 서울에서 1~2년 더 활동하다가 그 후에 결혼을 하자 했는데 여자친구가 제게 ‘네가 1~2년 더 서울에서 활동한다고 해서 뭐가 크게 달라질 것 같냐.’고 하더라고요. (웃음) 


당시에는 버럭했는데 가만 생각해보니 맞는 말 같더라고요. 이 사람을 놓치고 싶지 않은 마음이 커서 대학원을 졸업하던 해, 2017년에 결혼해서 충남에서도 서울과 가장 가까운 천안 아산에 살게 됐죠.

음악작업은 주로 집에서 해요. 

프리랜서로 막 활동을 시작했을 때는 작업실이 있었어요. 


가성비로 얘기하자면 투자 대비 수익이 높지 않아서 집에 장비를 갖춰 놓고 작업하고 있어요. 실용음악 하는 분들은 대개 비슷하겠지만 저도 베이스 기타로 음악을 시작했어요. 대학은 이공계를 전공했지만요. 학부 때 밴드로 시작해서 6년 동안 혼자서 음악을 팠죠. 어린 시절부터의 꿈이 음악을 하는 것이었는데 그 꿈을 늦은 나이에 실행한 거죠. 본격적으로 음악을 배워보고 싶다는 마음이 생겨서 대학원에 진학하게 되었고 서울에서 석사과정을 마쳤어요. 영상대학원에서 컴퓨터음악을 전공했는데 어떤 전공인지 대략 알고 갔지만 실용음악과는 거리가 있더라고요. 그런데 또 배우다 보니 흥미가 생겨서 이 분야로 빠지게 됐어요. 전자음악 베이스로 사운드 아트, 미디어 아트, 그리고 오디오 비주얼 같은 실험적인 음악을 하고 있어요. 

대학원을 졸업하기 전부터 서울에서 점점 섭외가 들어오기 시작했어요. 

졸업 직전부터 3~4년 정도는 주로 서울에서 일이 있었어요. 


서울을 벗어난 최근 1~2년 동안은 서울에서의 일보다 천안 아산쪽 일이 더 많은 편이에요. 충남문화재단의 지원사업을 통한 작업을 하고 레슨도 하며 지내죠. 서울에서 일할 때는 주로 매체에 들어가는 음악작업을 많이 했어요. 단편영화나 오디오 비주얼 무대 혹은 무용이나 연극을 위한 음악들이었죠. 천안 아산에 내려와서 일을 하면서는 실험적인 무대를 할 기회가 많지 않았어요. 이 분야의 연출가도 많지 않고요. 


충남에서 진행한 지원사업은 개수로 따지면 8개 정도가 되요. 

충남문화재단에서 하는 일은 한국예술인복지재단의 예술인 파견지원사업이에요. 예술인 파견사업(정식명칭 ‘예술로’사업)은 경기권과 서울에서만 추진되다가 2년 전부터 지역문화재단에서도 진행되고 있어요. 충남은 다섯 팀 정도 있는 것으로 알아요. 29명 정도가 활동하고 있는 셈이죠. 오히려 서울에서는 누군가 따온 지원사업에 협업하는 형태로 작업을 많이 했고 스스로 지원사업에 응모한 적은 한 번도 없었어요.

지역문화재단마다 지원사업을 운영하는 방식에 차이가 있다고 느껴요.

천안, 아산문화재단을 통해 경험한 지원사업은 일반적인 문화재단의 전형 같은 느낌이었어요. 


지원사업을 교부해 주고 예술인들 편의를 봐 주며, 교부 신청을 도와주는 식의 소통이 끝이었죠. 충남문화재단에서의 지원사업 경험이 좀 특별했어요. 예술가들과 적극적으로 소통하려는 분위기가 있었거든요. 다원예술분야가 특히 그랬는지 모르겠지만 충남 안에서의 커뮤니케이션, 예술가 간의 커뮤니티를 중요하게 생각하는 분위기가 형성돼 있더라고요. 그러다 보니 예술인들도 비교적 편하게 재단 직원분들에게 다가갈 수 있는 분위기였어요. 


충남문화재단 사업을 하면서는 미술 작가님, 또 파견 지원사업을 통해서는 나중에 함께 예술 협업작업을 할 수 있는 음악가나 무용수를 만날 수 있었어요. 미술 작가님과는 이미 협업을 진행했고 작년 예술인 지원사업에서 만난 음악가분과는 기회가 닿으면 함께 작업하자는 말이 오가는 중이에요.

천안, 아산지역의 아파트 산책로에서 전시를 개최한 경험이 있어요.

작년, 충남문화재단의 다원예술 지원사업을 통해서였어요. 

기획초기에는 실내 공간에서의 전시를 준비하다가 멘토님, 재단직원분들과 소통하며 피드백을 받는 과정에서 야외에서 전시를 해보면 어떻겠냐는 의견을 수렴했어요. 아파트 산책로에 천막을 쳐 놓고 프로젝터를 쏴서 음악과 영상이 함께 나오는 발표였죠.


집 바로 근처에 있는 30동 규모의 아파트 산책로였는데 단지 뒤편으로 산책로가 이어져 있어요. 전시영상의 사이즈가 그리 크지 않아서 나무가지에 스크린을 걸었어요. 나무와 나무 사이에 ‘샤막’을 걸어 놓고 프로젝터가 뒤에서 영상을 쏘는 방식이었죠. 블루투스 스피커와 노트북을 연결해서 음악이 나오고 그 음악에 반응하는 영상이 스크린에 맺혀요. 그 앞으로 사람이 지나가면 실루엣이 일렁이고요. 


천안 아산, 특히나 지역의 아파트 촌은 예술에 대한 노출이 많지 않잖아요. 

그래서 반응이 각양각색이었어요. ‘이런 거 하면 얼마 버냐?’ 묻는 어르신도 계셨고 아이들과 함께 온 가족들은 전시를 적극적으로 체험하면서 즐거워하셨어요. 아무래도 익숙지 않은 장르다 보니 제가 리플렛을 나눠드리면서 한 번 보고 가셔라, 모객도 했거든요. 혼자 산책하던 어르신들은 보통 시큰둥한 반응이셨지만요. (웃음)

지역에는 다원예술, 사운드 아트를 위한 전시장이 많지 않아요.

천안, 아산에 큰 전시장이 많지는 않지만 작은 전시장은 찾다 보면 꽤 있어요. 


그런데 보통 시각 작가들을 위한 전시장이죠. 저는 음악을 베이스로 실험적인 다원 예술을 하는 사람이잖아요. 때문에 전시장에 프로젝터도 설치해야 하고 공간 구조도 다양하게 활용해야 해서 전시장이 난잡해질 수가 있어요. 이런 점들 때문에 대관 자체를 거부하는 공간이 많아요. 현재 준비 중인 전시를 위한 공간도 겨우 찾았어요. 천안터미널 옆의 작은 전시장인데 그곳의 대표님 모토가 ‘어떤 장르가 되었든 예술가가 하고 싶은 것을 최대한 진행할 수 있도록 지원하자.’는 것이었기 때문에 가능했던 것 같아요. 

서울에서 살 때와 천안에서의 활동을 비교하면 아무래도 서울이 기회가 많은 건 사실이에요. 

음악을 처음 시작했을 때의 목표로부터 많이 벗어나게 될 수밖에 없는 것 같아요. 


가령 여럿이서 함께 작업을 할 때, 제가 천안에서 서울로 왔다 갔다 한다고 하면 아무래도 협업하시는 분들 입장에서는 저를 조금 부담스럽게 느낄 수도 있다고 생각해요. ‘교통비라도 챙겨줘야 되나?’ 이런 생각이 들 수 있으니까요. 때문에 기회적인 측면이나 서울지역의 예술가들과의 소통에 어려운 지점이 있죠.


음악을 처음 시작했을 당시의 목표는 제가 하고 싶은 장르의 음악을 계속 하는 거였어요. 현재 저의 1집 앨범이 나와 있는데 그 앨범도 오디오 비주얼 기반의 전시, 공연장이 있는 공간에서 관객들과 만나면서 공개하는 것이 가장 효과적인 형태의 음악이거든요. 이 같은 작업을 꾸준히 하면서 연극작업이나 전시 음악도 하고 실험적인 프로젝트에서 음악 감독으로서의 경력도 쌓아 가면서 다방면으로 일 할 수 있는 작곡가가 되는 것이 목표였어요. 솔직히 이야기하면 많은 예술가들이 그렇겠지만 더 큰 상업적인 성공도 바랐었고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천안 아산에서의 삶은 아주 만족스러워요. 

현재 천안, 아산에서 저와 와이프, 강아지 두 마리와 함께 살고 있어요. 


제가 복잡한 곳에서 운전하는 걸 굉장히 싫어해요. 와이프 역시 사람 많은 곳을 싫어하는 성향이고요. 예술접근성이나 활동의 기회는 많이 줄어들었을지언정 저 개인의 행복감은 아주 높은 상태예요. 


제 사는 동네에서 가장 좋아하는 곳은 우리 부부가 주로 산책하는 공간이에요. 그 다음으로는 우리 집이요. 와이프와 저, 둘다 집순이 집돌이라서요. (웃음)


집 앞에는 아이들이 뛰노는 작은 공원이 있고, 옆 동네로 넘어가면 큰 언덕 공원이 있는데 그곳에는 황토길과 운동시설이 잘 되어 있어서 매년 벚꽃이 피는 시기가 되면 꼭 산책하러 들러요. 아산이지만 천안에 붙어 있는 ‘장재리’라고 하는 곳이에요.

자연인으로서는 이렇게 한적한 곳, 주택에 살면서 제 삶이 많이 달라졌어요. 

천안, 아산으로 이사할 당시에는 말티즈 한 마리를 키우고 있었어요. 


이사 후, 동네를 돌아다니고 있던 유기견 한 마리가 저희 집으로 갑자기 들어온 거예요. 저희 집 마당에서 동네 초등학교 친구 한 명의 기타 레슨을 하고 있었는데 말티즈 성격 아시잖아요. 무단 침입을 한 주제에 마당에 들어와 엄청 짖어대길래 쫓아냈는데 집 바로 앞이 차가 많이 안 다니지만 그래도 차도이다 보니 이내 쫓아 나갔어요. 그랬더니 배를 까뒤집고 해서 알고 보니 굉장히 순한 강아지였어요. 지역 커뮤니티에 주인을 찾는 게시물을 올려봤는데 아무도 나타나지 않아서 제가 입양을 하게 됐어요. 


유기견을 입양을 한 셈이니까 아산에 있는 유기견 센터를 한번 방문해 봤어요. 

강아지 칩 검사도 할 겸, 유기견에 대한 정보를 얻을 셈이었죠. 그 때, 수많은 유기견들을 알게 되었어요. 정신차리고 보니 1~2년 동안 유기견 봉사를 하게 됐어요. 갑자기 천안, 아산으로 이사와 주택에 살게 되면서 우리집 마당에 불쑥 들이닥친 강아지 한 마리 때문에 봉사도 다니게 되고 별 일을 다 한 것 같아요. 제 인생이 많이 바뀌었다고 할 수 있어요.

지금, 거주지를 다시 고르라고 한다면 물론 고민이 되긴 하지만 천안을 선택할 것 같아요. 

지역에 살면서 ‘이 예술 활동을 계속 할 수 있을까?, 내년에라도 그만둬야 하는 게 아닐까?’하는 걱정이 있는 것이 사실이에요. 


서울 살이를 선택하면 수입적인 측면을 포함해서 내가 처음부터 하길 원했던 방식으로 음악활동을 이어 나갈 수 있을 지는 모르지만 이곳에서의 삶과 와이프, 그리고 강아지를 생각한다면 천안 살이를 선택하겠어요. 그리고 여기서 하고 있는 예술활동도 즐겁거든요.


최근까지 서울에서 진행했던 작품 중에 실험적인 전시를 하시는 연출님과의 협업작업이 있었어요. 그 작업이 너무나 재밌었어요. 서울에서 한 작업 중, 유일하게 작업하며 재미를 느꼈다고 할 수 있을 정도였으니까요.  그 연출님 같은 분들이 지역에도 계시면 좋겠어요. 또 동료 커뮤니티가 돈독하면 좋겠다 싶고요. 지역으로 내려올수록 아무래도 1차원적인 예술, 접근하기 쉬운 기초 예술들이 많다 보니까 실험적인 예술이 활발해지길 바라요. 

천안, 아산에서의 삶은 만족스럽지만 그럼에도 아쉬운 점은 주변에 문화공간이 많지 않다는 것이에요. 

거의 없다시피 하다고 할 수 있죠. 


지역에는 문화예술공간이라고 하기엔 좀 부족한 도서관시설이 가장 많아요. 이번에 전시하는 곳도 생활문화센터, 그러니까 지역주민들이 많이 이용하는 공간의 세미나실인데 그곳의 3층에 작은 전시실이 있어요. 그 공간이 있었기에 내가 사는 지역에서 전시를 할 수 있게 되었죠. 저는 실험적인 음악을 하는 사람이고 이 같은 장르는 대부분 영상 매체나 무용, 연극과의 협업이 많기 때문에 내 동네에 살면서 어떤 예술적 영감을 받기엔 어려움이 있는 것도 사실이에요. 

내가 사는 동네를 모티브로 작품을 만든다면, 동네의 소리들을 수집해서 전시를 할 것 같아요. 

소리만으로 전시를 한다면 관객의 입장에서는 전시의 형식이 완전치 않다고 생각할 수 있기 때문에 다른 시각 작가님과 협업을 하고 싶어요. 모든 작업의 시작을 소리에서 출발해서 동네의 사운드나 동네 소음, 동네의 자연이 내는 소리들을 주제로 작업을 해볼 수 있을 것 같아요. 


제가 좋아하는 주택 단지는 차도 안으로 들어오면 갑자기 소리가 딱 끊겨요. 고요한 가운데 새소리도 많이 들리고 창문을 열면 아이들 뛰노는 소리도 많이 들리죠. 내가 사는 동네의 소리 하면 바로 떠오르는 것이 아이들 소리, 자전거 소리, 강아지 소리, 빗소리. 이런 것들이에요.

나의 하루는 이래요. 

오전 5시쯤에 일어나요. 


와이프의 일이 새벽에 시작돼서 오후 2~3시면 끝나거든요. 와이프 아침을 간단히 챙기고 강아지들 산책을 시켜요. 강아지 두 마리 다 일어나자마자 산책을 한 번 시켜야 얌전해지거든요. 산책을 마치면 바로 컴퓨터를 켜고 책상에 앉아요. 아침 작업이 잘 되는 편이라 오전 11시 정도까지는 계속 작업을 진행해요. 결혼하기 전에는 저녁형 인간이었는데 와이프의 스케줄에 맞추어 라이프 사이클을 변화시키다 보니 아침 공복상태로 점심 전까지 작업하는 그 시간이 잘 맞다는 사실을 알게 됐어요. 커피만 마시면서 작업하다가 11시 반쯤 점심을 먹어요. 오후엔 작업이 많으면 바로 다시 작업을 이어가고 그렇지 않으면 강아지들 낮 산책을 나가죠. 기타 레슨을 하기도 하고요.


와이프가 퇴근하고 집으로 돌아오면 함께 동네 카페를 가거나 집 마당에 평상에 그냥 누워 있어요. 그러다가 저녁을 만들어 먹으며 술도 한 잔씩 하고요. 시켜 먹지 않고 만들어 먹는 걸 좋아하거든요. 그리고 드라마를 보다가 일찍 잠들어요. 심플한 일상이죠.

마치 이상향 같은, 나의 예술로 꾸는 꿈이 있어요.

저의 1집 앨범 주제가 ‘Sound Track from Lost Film’이에요. 

로스트 필름이란 영화가 되려다 말았던 것들을 일컬어요. 제작 초기부터 작정하고 로스트 필름을 컨셉으로 잡아서 서사를 만들 수도 있죠. ‘로스트 필름에 대한 사운드 트랙’이라는 컨셉으로 제가 시나리오를 쓰고 거기에 맞는 음악을 만들어서 앨범으로 냈어요. 트랙마다 오디오 비주얼이 있고요. 그 작업을 되도록 큰 전시장, 가능하다면 1층, 2층, 3층을 다 쓸 수 있는 공간으로 옮겨요. 한층 한층 올라가면서 음악과 비주얼을 동시에 감상할 수 있는, 걸어가면서 서사를 파악할 수 있는 형태의 전시를 하고 싶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