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서울 인터뷰

서울과 광명의 지역색이 

완연하게 다르다는 것을 느낀다.

나는 1994년생,
광명에 사는 배우 이규빈입니다.


이규빈

광명 거주 배우

오늘의 인터뷰를 제안 받고는 좀 색달랐던 것 같아요.

배우로서의 저를 인터뷰하는 것이 아니라 비서울 지역에 사는 예술가를 인터뷰한다는 건, 내게 어떤 이야기를 원하는 걸까 하는 생각이 들었거든요.

사춘기를 좀 세게 보냈어요. 

진로에 대한 방향을 못 잡고 있었거든요. 


그 시절, 할머니께서 일일 드라마를 즐겨 보셨어요. 할머니가 드라마를 못 보신 날이 있으면 제가 그 이야기를 대신 전달해드렸는데 드라마 내용을 꼼꼼히 설명하다 보니 연기라는 것에 점점 재미를 붙이게 된 거죠.


중학교 때 연극부에 들어가서 연기를 처음 접했는데 역시 너무 재미있었어요. 해서 예고에 진학했어요. 예고 합격 통지를 받던 그 순간이 태어나서 처음으로 누군가에게 인정받은 경험이었던 것 같아요. 중학교까지 광명에서 다니고, 안양에서 예고를 다녔어요.

안양예고 시절은 정말 행복했어요. 

그때의 기억이 지금의 저를 자주 웃을 수 있는 사람으로 만들어 준 것 같아요.


처음엔 광명에서 안양까지, 통학시간이 못해도 1시간은 걸릴 줄 알았어요. 시 경계를 넘어야 하니까요. 그런데 오가는 길이 그리 멀지 않더라고요. 인문계 고등학교의 친구들처럼 공부하고 그 외의 시간은 전공과 부전공 시간으로 나누어 연극을 배우게 됐죠. 방과 후에 학교에 남아 친구들과 연극 연습하는 것이 너무나 즐거웠어요.


대학은 연기과 경쟁률이 엄청나서 재수를 하게 되었어요. 대학교는 광명에서 통학하기에 너무 멀어서 학교 바로 앞에서 자취를 했죠. 스물 둘, 셋까지 서울에서 살다가 다시 광명의 집으로 돌아왔어요. 3학년이 되고부터는 학점을 많이 채우지 않아도 돼서 광명과 서울을 왔다 갔다 한 거죠. 

서울에 있는 대학 근처의 동네 분위기, 대학 문화가 저와 잘 맞지 않았어요.

학교 근처에 살다 보니 제 성향과 대학가 문화가 맞지 않는다는 것을 알겠더라고요. 


어쩌면 약간 불건전하다고 생각했던 것 같아요. 무엇보다 넓은 집에서 편안하게 있고 싶었어요. 학교 앞 자취방이 비싸지는 않았는데 그래도 광명 본가에 살면 편안하고 쾌적한 공간에 있을 수 있으니까요.


대학생활 중, 2년 정도를 용산에서 살아보기도 했는데 학교와 용산 집을 왔다 갔다 하면 교통편이 편하다는 게 가장 큰 이유였죠. 역시나 다시 광명 집으로 돌아왔어요. 서울은 복작복작하고, 지하철 타면 사람도 많고 차도 늘 막히잖아요. 한적하고 여유로운 게 저랑 더 잘 맞았죠. 활동 분야인 연극은 늘 많은 사람들과 서로 부대끼며 작업하는 장르이긴 하지만요. 

대학을 졸업하고는 해마다 세 편에서 네 편의 연극을 올렸어요. 

그 시기는 광명에 살고 있을 때라 대학로에서 연습을 마치고 나면 막차가 끊긴 적도 많았어요. 


그럴 때면 최대한 막차 시간이 여유 있는 지하철 역으로 이동해서 종착역에 내려 시내버스를 타거나 택시를 타고 집에 돌아갔죠. 그렇게 해도 택시비가 2만 5천 원, 3만 원씩 나오니 출연료를 생각해 보면 손해를 봐 가면서 공연한 셈이 됐어요.

서울과 광명의 지역색이 다르다는 것을 너무너무 많이 느껴요.

광명은 서울에 비해 대중교통이 잘 갖춰지지 않아요. 


서울은 어딜 가도 빠르고 편하게 갈 수 있죠. 그런데 제가 서울에서 살았던 곳들이 유난히 그랬던 것인지 동네의 분위기만 놓고 보자면 광명에서 살 때가 더 쾌적했어요. 서울은 사람이 워낙 많다 보니 거리가 청결하지 않다고 느낀 적이 많았고 광명에 살 때는 보지 못했던 거친 사람들을 자주 마주치기도 했어요. 자취를 하며 여자로서 안전하지 못하다고 느낄 때도 있었고요. 술 취한 사람들이나 조금 위험한 뉘앙스의 느낌을 주는 사람들이 있었죠. 길 가다가 눈 마주치면 갑자기 욕설을 뱉는 사람도 있었으니까요.

 

광명의 우리 동네는 여유롭고 한적한 동네 같은 느낌이에요. 마치, 마을 같은 느낌. 

집 앞에 산책로도 잘 갖춰져 있고 조금만 나가면 상업지구가 있는데 거기에는 또 가족단위 가구가 많아요. 

신혼부부나 이제 막 아이를 키우기 시작한 가정이 많이 살다 보니 발랄하고 정겨운 느낌이 있어요. 지금은 서울의 길음동 집과 광명 본가를 왔다 갔다 해요. 용인과 분당에서 복지관수업을 진행하고 있어서 수도권 전반을 오가는 편이고요. 장애인 분들을 대상으로 연극과 체육을 결합시킨 예술체육 수업을 하고 있거든요.

광명시 예술가들과 커뮤니티를 형성해서 합동으로 공연을 올려 보면 어떨까 하는 생각도 들어요.

광명시에 거주하고 있는 청년예술가들이 많을 텐데 말이에요. 


광명시 청년동만 해도 청년 예술가들이 많이 모일 것 같거든요. 아직 광명에서 공연을 해 본적이 없어서 더 그런 생각이 드는 것 같기도 해요. 요즘 광명시민회관에서도 연극 공연이 간간이 열리더라고요. 예전에는 음악 콘서트위주의 공연이 개최되었던 것 같은데 근래에는 적어도 1년에 한 편씩은 연극 공연이 올라가요. 

아마, 광명에 대한 애정 때문인 듯해요. 

제가 자란 곳이기도 하고 광명에서 공연을 하면 부모님을 모시기에도 편하니까요. 


같은 동네에 거주하고 있는 예술가들을 만나고 싶어요. 그런데 광명에는 청년예술가 커뮤니티를 찾기가 힘들더라고요. 그럼에도 그들과 만날 수 있는 기회를 원하고 있어요. 서로 다른 예술 분야의 사람들끼리 만나게 되더라도 커뮤니티 안에서 새로운 것들이 형성되어 신선한 작품이 태어날 수 있을 테니까요. 청년들끼리 서로 소통하면서 영감을 주고받을 수 있다면 많은 것들이 풍성해지지 않을까요.


아직 광명에서 진행해본 지원사업의 경험은 없어요. 

최근에 서울 ‘청년예술청’에서 하는 프로젝트에 음향 오퍼로 참여했어요. 서울문화재단의 사업에 참여해서 아르코 공연장에서 공연도 했었고요. 광명의 지원사업은 제가 아직 잘 모르고 있기 때문에 경험할 기회가 없었던 것 같기도 해요.

광명은 청년예술가를 위한 지원사업이 이미 있지만 홍보가 조금 부족한 것 같아요. 

광명시에서 청년예술가들이 연습실도 쓸 수 있고, 클래스도 열 수 있는 공간은 제가 알기로 광명시 청년동 뿐인데 이런 공간이 동마다 있으면 어떨까 싶어요. 


그러면 예술가들 간의 소통이나 커뮤니티가 더 활성화되지 않을까요? 요즘 가장 활발하게 소통이 이루어지는 플랫폼이 소셜미디어잖아요. 그래서 예술가들끼리 네트워킹을 할 수 있는 자리가 있다면 청년동 인스타그램을 이용해서, 아니면 광명시에서 적극적으로 SNS 홍보를 하면 좋을 것 같아요. 


분명, 예술분야에 관심있는 청소년들도 많을 텐데 그런 청소년들과 멘토 예술가를 연결해 줄 수 있는 시스템이 갖춰진다면 광명에도 예술 씬이 점점 발전하지 않을까 싶어요. 

광명 지역을 모티브로 작품을 만든다면 어떨까 생각해 봐요.

내가 사는 동네는 예전엔 정말 촌 동네였는데 지금은 엄청나게 발전했어요. 


중학생 때 까지만 해도 시골 느낌이었는데 20대 중반 쯤에 이케아가 생기고 난 후부터 급속도로 발전 한 거죠. 제가 어렸을 때 이케이가 들어선 지역에는 피 묻은 허수아비들이 늘어서 있고 빨간 페인트로 ‘우리더러 나가라니!’ 이런 문구가 적힌 플래카드가 즐비했어요. 낡은 비닐하우스도 많았고요. 어린 시절, 그런 모습을 보고 충격을 받은 기억이 있어요. 


그랬던 곳이 몇 년 뒤, 고층 아파트들이 들어서고 백화점, 코스트코가 생기는 걸 보면서 발전하는 건 좋지만 ‘그때 그 상황에 있던 사람들은 다 어디로 갔을까.’ 생각하게 되요. 거기서 쫓겨난 사람들, 그 사람들이 겪은 상황들에 대한 이야기를 써 보면 어떨까 싶어요. 

제가 사는 곳 근처에는 여전히 한적한 공간도 많아요. 

한내천이요. 한내근린공원. 


봄에는 벚꽃이 만발해서 정말 예쁘거든요. 마음이 힘들 때에 거기를 자주 걸었어요. 계절마다의 변화가 너무 아름답고 관리를 잘 해 놓기도 했어요. 저녁 무렵에 가면 배드민턴을 즐기는 학생들도 보이고, 풋살을 하는 사람들도 있어요. 도란도란 함께 얘기하며 산책하는 가족들이 있는 풍경이죠.

기형도 시인이 광명에서 유년시절을 보냈다고 해요.  

이케아 근처에서 일하던 때에 별 생각없이 들러서 잠깐 쉬어가곤 했는데 그 공간이 참 좋더라고요. 


쉴 때 전시나 공연과 관련된 공간에 가는 걸 좋아해서 서울시립미술관, 예술의 전당 같은 곳을 좋아해요. 광명에는 서울만큼 전시, 공연공간이 많지 않죠. 광명역 쪽 아파트 단지에 조그마한 전시 공간이 있는 것으로 알고 있는데 짧은 이벤트 형식위주인 것 같고요. 


광명에는 예술에 대한 수요가 많지 않기 때문이 아닐까 싶어요. 


서울과 너무 가까우니까요. 광명시는 많은 인구가 낮에 일하러 서울로 갔다가 밤에 다시 돌아오는 베드타운 성격이 강하잖아요. 광명과 서울은 거의 붙어있다시피 하다보니 서울에서 살더라도 생활이 지금과 크게 다르지 않을 것 같아요. 심지어 지역번호도 ‘02’를 쓰잖아요. 실제로 차선 하나를 사이에 두고 여기는 광명 저기는 서울, 이런 곳도 있죠. 

요즘의 생계는 수업과 레슨으로 유지하고 있어요.  

연기 학원에서 수업을 꽤 많이 맡고 있어요. 


화요일과 금요일에 7개의 클래스를 진행하고 틈틈이 학교 특강에 가기도 해요. 일반고등학교에서 희곡 낭독 수업을 하거나 연기 발성 수업을 등을 병행하며 생계 유지를 하고 있어요. 


공연만 했을 때보다 수입은 훨씬 넉넉한 것 같아요. 공연을 할 때는 정말 바쁘게 지냈는데 생활비 대부분을 부모님께 의지해야 했을 정도로 생계 유지가 되지 않았거든요. 


때문에 공연을 계속 하고 싶지만 지금은 교육에 집중하고 싶어요. ‘1년에 한 번쯤은 공연을 해야지, 아이들 가르칠 때에도 경험이 있어야 가르치니까…’ 싶은 마음이 있죠. 

연기를 하는 기쁨도 정말 컸는데 누군가에게 연기를 알려주면서 그 사람이 자신을 표현하고, 그러면서 억눌렸던 감정이 치유되어가는 모습을 보면 굉장히 기뻐요. 


연기 수업을 하게 된 것도 서른이 되면서 시작된 고민 끝에 내린 결정이에요. 


배우를 꿈꾸는 청년들을 대상으로 한 기초 연기 수업이 시작이었어요. 이후로 공연이 4편 정도 들어왔는데 정말 하고 싶었던 공연들이었지만 수업에 지장이 생기니 일단은 교육 쪽으로 집중해보자 결정하고 계속 연기 수업 일을 하고 있어요. 요즘엔 성인들을 대상으로 한 기초 연기, 오디션 연기 수업을 하고 있고 복지관 수업에서 장애인 분들을 대상으로 예술체육과 움직임 수업을 하고 있지요.

나의 하루는 이래요.  

오전 7시쯤에 일어나서 부랴부랴 준비를 한 다음, 아침도 못 먹고 복지관 수업을 가요. 


보통 8시 반쯤 출발하는데 기흥에서 수업을 마치면 12시쯤 끝나죠. 거기서 1시간 반 정도 걸려서 집에 도착해서는 3시부터 4시까지 피아노 레슨을 받고요. 조금 더 연습을 하다가 5시부터 6시까지 보컬 레슨 수업을 진행하고 그 다음엔 합정으로 넘어가서 7시 반부터 10시까지 연기 수업을 맡아요. 


집에 돌아오면 11시 정도 되는데 연애를 하고 있다 보니 만나고 있는 분과 그때부터가 데이트 시간이에요. 1시간 정도 산책하고 헤어지고, 밤 12시에 집에 돌아오면 씻고 바로 잠에 들어요.

마치 이상향 같은, 나의 예술로 꾸는 꿈이 있어요.  

음악, 미술, 연극, 글쓰기 등. 다양한 예술가들과 함께 워크샵을 크게 열어보고 싶어요. 


연기 수업을 맡게 되면서 여러 청년들을 만났는데 사람들은 누구나 마음속에 아픈 기억을 갖고 있더라고요. 그런데 그걸 외면하거나 회피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일상생활에서 자신의 감정을 표현하지 못하고 있고요. 그런 부분을 연기로 표현하게 함으로서 치유를 받고, 먹던 약을 안 먹게 되거나 외면했던 자신의 모습을 마주할 수 있는 시간이었다, 이런 피드백을 받기도 했죠. 


연기를 가르치면서부터 연기라는 행위가 누군가를 치유하는 데에 활용될 수 있다는 걸 알게 되었고, 연기뿐만이 아니라 미술이나 음악, 무용처럼 다른 예술의 힘을 보탠 치유의 워크샵을 만들고 싶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