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서울 인터뷰
수원에서 서울로 이동하는
한시간 반의 거리는 내게 소중한 시간이다.
나는 1992년생,
수원에 사는 배우 윤효원입니다.
윤효원
수원 거주 배우
집은 수원이지만 가산디지털단지 근처에서 한 달 정도 지낸 적이 있어요.
올해 초, 남자친구의 집이 있는 가산디지털단지 쪽에서 잠시 지냈어요.
확실히 편하긴 정말 편하더라고요. 수원 집이었다면 원래, 출발해야 될 시간에 침대에서 일어나도 된다는 게 너무 좋았어요. 결혼을 준비하면서 다시 수원으로 집을 구하긴 했지만요.
남자친구는 음악감독으로 활동하고 있고 둘 다 일은 서울에 많으니, 서울에서 살고 싶긴 했지만 서울에서는 저희가 원하는 상태의 집을 구할 수 없겠다는 판단이 들었어요.
현재 이사 온 수원의 집은 현관을 나가면 풀이 있고 강이 있고 산이 있거든요. 저는 창문을 열었을 때 풍경이 탁 트여 있어야 한다는 확고한 기준이 있는데 제 남자친구는 이 같은 욕망이 저보다 더 심해요. 늘 자연을 곁에 둬야 하는 사람이고, 파릇파릇한 곳이 지척에 있어야 하는데 저희가 가진 금액 내에서는 서울에서 그런 곳을 찾기가 쉽지 않더라고요. 탁 트인 풍경, 파릇파릇한 자연이 집을 둘러싸고 있는 그런 곳이요.
곧 결혼할 제 남자친구 역시 청년예술가라고 할 수 있죠. 그는 어렸을 때 지방에서 살다가 15살쯤 서울로 올라와 15년 정도를 서울 가리봉동에서 살았대요. 서울의 전봇대들과 회색 도시 같은 느낌이 꽤 싫었나 봐요. 그래서 결혼하고 살 집을 수원으로 정했어요. 그런데 그 친구는 구로에 새로 작업실을 구했어요. 저는 수원에서 구해도 될 거라고 생각했는데 음악하는 사람이다 보니 녹음을 하러 사람들이 드나들잖아요? 수원까지 오라고 하기가 힘든 가 보더라고요
수원 화성이 있는 행궁동에는 축제가 많이 열려요.
다양한 행사에서 인형 탈 아르바이트도 해보고 수원에 새로 생긴 대형 공연장, SK아트리움에서 몇 달 전에 인형극 공연도 했어요. 집에서 가까우니 공연 준비하기도 수월하고, 수원에 새로 만들어진 대형 공연장이 있으니 좋더라고요. 소극장이 많으면 물론 더 좋겠지만 지역에서 개인이 소극장을 운영하기란 쉽지가 않으니까요. 지역에 지자체나 기업에서 운영하는 극장이 생기면 자연스럽게 지역 예술가들에게 일거리가 생기는 것 같아요.
코로나 기간에 돈이 급하니까 이런 저런 지원사업을 검색해보다가 그때 처음으로 수원문화재단이 생각보다 예술가들을 위한 다양한 사업을 많이 하고 있다는 걸 알게 됐어요.
예전에는 스스로 지원사업을 찾아볼 생각도 하지 않았고, 그저 들어오는 공연 일정을 소화하는 것만으로도 충분했던 것 같아요. 극단활동을 하며 스스로 안정적이라는 감각을 찾을 무렵에 극단 공연 말고 내가 창작하는 작품을 만들고 싶다는 생각으로 지원사업을 검색해 봤어요. 코로나 시절인 2021년에 제 첫 지원사업으로 수원문화재단에서 창작지원금을 받아서 공연을 만들었어요.
연극하면서 제가 지쳤던 부분이 공연을 올리면 다 아는 사람들이 관객으로 오는 거였어요.
지원금은 수원문화재단에서 받았지만 공연은 서울의 문래동에서 올렸어요. 꼭 수원 내에서 공연을 올려야 한다는 제약이 없기도 했고요.
제가 대학 4년 내내 봉산탈춤을 배웠는데 거기에 ‘미얄’이라는 캐릭터가 있어요. 미얄 할매가 전쟁통에 잃어버린 할아버지를 찾아다니는 내용인데 그 내용을 따왔죠. 미얄 할매의 사연에 제주 4·3 사건을 겹쳐서 극을 만든 거죠.
서울 문래동의 작은 스튜디오에서 공연을 올렸어요. 한 3평 정도 되는, 사람이 많이 앉아 봤자 12명 정도 앉을 수 있는 공간이었어요. 수원문화재단의 지원금으로 서울에서 공연을 올린 것이 이상해 보일 수도 있지만, 수원SK아트리움에 공연을 올릴 수도 없고 무엇보다 관객이 가장 큰 문제라고 생각했죠.
관객이 대부분 지인인 것이 배우로서의 나를 지치게 만들지만 또 그 관객이라도 와야 객석이 차니까요. 고등학교 친구들을 다 부른다고 해도 수원에서 공연을 해서는 어떤 공간을 빌리더라도 그 객석을 채울 자신이 없었어요. 서울의 동료들에게 수원까지 공연 보러 오라 하는 것도 어려운 일이죠.
그럼에도 수원에서의 생활은 정말 만족스러워요.
제가 혼자 ‘독서당’이라고 이름 붙인 곳이 있어요.
저희 동네가 아파트 뒤편이 다 산이고 논이고 그래요. 심지어 농기구 전용도로도 있어요. 그런 동네지만 아파트에 사니까 대사 연습이 힘들어요. 층간 소음 때문에 움직임 연습도 어렵고요. 대사를 입 밖으로 내보고 싶은거죠. 한때는 동네의 오두막에서 탈춤도 추고 연기 연습도 하다가 요즘은 (저만의 이름인) ‘독서당’에서 대사도 외우고 동선도 밟아봐요. 탁 트인 공간이라 제가 정말 좋아해요.
수원에서 했던 작업중에 제가 뿌듯함을 느끼는 공연이 있어요.
수원의 ‘광화문 서림’이라고, 이름은 광화문인데 수원에 위치한 독립서점이에요.
예술인 파견사업을 할 때 연극인으로서 할 수 있는 작업이 뭘까 고민하다가 일상에서 만날 수 있는 예술을 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주택가 한복판에서라도, 잠깐 짧게 스치듯 봐도 재밌는 퍼포먼스를 만들고자 했어요. 제가 큰 기술이 있는 건 아니지만 동상 마임이라고, ‘스태츄 마임’을 해보면 어떨까 싶었죠. ‘광화문 서림’ 앞에서 퍼포먼스를 했는데 스스로 만족감을 느끼는 작품이에요.
언젠가 내가 사는 곳, 수원을 모티브로 작품을 만든다면 행궁동이나 호매실에서 ‘소녀상’ 스태츄마임을 해보고 싶어요. 경관을 깨지 않으면서도 주변 환경에 자연스럽게 녹아들 수 있는 퍼포먼스를 만들것 같아요.
연기를 시작하게 된 건, 전국 청소년들을 대상으로 한 연극 동호회에 들어가면서 부터에요.
전국이라고 하지만 대체로 서울 경기권의 고등학생들로 구성돼 있고 그 본거지가 사당에 있어요.
친구를 따라 갔는데 연기가 너무 재밌는 거예요. 고등학교 1~2학년 때만 해도 연기는 예쁘고 잘생기고 끼 많은 사람들이 하는 거지 내가 무슨 연기냐 싶은 생각이었어요. 고3이 되고 진로를 정해야 할 시기가 닥쳤는데 함께 동호회를 하던 오빠가 연기 학원을 다니다 한 달도 안 돼서 그만두더라고요. 배우는 몸을 잘 써야 하니까 보통 연기학원에서 다리 찢기를 시키거든요. 그 다리 찢기가 싫어서 한 달 만에 그만뒀다는 거예요. 그 얘기를 듣는데 ‘아니, 그 정도 마음가짐으로 연기를 하겠다고 학원을 다녔다는 거야?’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저런 마음가짐보다는 내가 좀 더 잘할 수 있을 것 같았어요. 연기 입시 끝에 상명대 연극학과에 입학했어요. 입시를 위해 다니던 연기학원도 사당에 있어서 매일 수원에서 사당까지 왔다 갔다 했죠.
수원의 '남문'이라는 곳에 모든 예체능 학원들이 몰려 있어요.
수원에도 연기 학원이 있는데 굳이 왜 사당까지 갔는지 모르겠어요.
제 집에서 수원 남문을 가나 사당을 가나 시간이 비슷하게 걸려서 사당에 있는 학원을 다녔던 것 같아요. 서울로 향하는 교통이 잘 되어 있어서 수원안에서 이동하는 거리와 서울로 가는 거리가 비슷하거든요.
졸업하고는 운이 좋게도 대학 선배님의 소개로 바로 공연에 입봉했어요. 2년 정도 들어오는 공연들을 많이 했죠. 겁이 많아서 오디션을 잘 안봤는데도 감사한 일이죠. 제가 그 2년 동안 했던 공연들이 보통 타악이 가미된 공연이었어요. 그러면서 연극이 아닌 다른 장르 예술인들을 많이 만나니까 그렇게 무식하게 버틸 필요가 없었구나 싶더라고요.
대학로에서 공연을 하면서 이런 세계도 있구나 깨달았어요.
저는 공연준비에 돌입하면 항상 나를 갈아 넣는 느낌이거든요. 그런데 입봉을 하고 대학로에서 공연 준비를 하는데 연습 시간 끝나면 딱 집에 가고, 본인이 준비해야 할 것이 끝나면 깔끔하게 연습을 마치고, 이런 사람들을 목격했죠. 새로운 세계가 있구나 싶었어요. 대학선배의 소개로 공연에 들어가거나 오디션을 많이 봤어요.
대학의 인연이 커뮤니티가 되어 서로 끌어주고 연결해주는 네트워킹이 중요한 걸 느껴요. 대학 선배의 소개로 합류하게 된 상설 공연이 있었는데 기존의 배우들이 다 탈퇴하던 시즌이었어요. 때문에 공연 합류하고서 한달 연습하고 바로 공연에 올라갔어요. 그 공연은 들어가서 두 달 후, 바로 엎어졌지만요. 그 뒤로는 여성연출가전에서 작품을 하기도 하고, ‘공상집단 뚱단지’에서 악사역도 맡으면서 들어오는 공연은 거의 다 했던 것 같아요.
연극계 내의 인맥, 네트워킹이 중요한 건 사실이에요. 그런데 그걸 벗어나고 싶기도 해요.
아는 사람이 하나도 없는 곳에서 새로 시작하고 싶은 마음 아세요?
연극은 유난히 알음알음 소개로 캐스팅되는 경우가 많아요. 그러다 보니 어느 작품에 새로이 들어가도 아는 사람, 혹은 건너 건너 아는 사람이 꼭 있어요. 공연을 보러 가도 한 다리 건너면 다 아는 사람인 경우가 허다하고요. 아무도 나를 모르는 프로덕션, 그런 상태에서 올리는 공연에 목말라 있어요.
대학이 천안에 있지만 졸업하고는 대부분 대학로에서 활동하죠.
그렇지 않으면 본인의 본가가 있는 지역에 내려가는 정도죠. 그 경우도 많지는 않고요.
아예 지방에서 살지 않는 이상은 다 경기권에서 서울로 왔다 갔다 하면서 활동하는 것 같아요. 지금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지만 대학 재학중일 당시에는 모든 연극공연이 대학로에서만 올라가는 줄 알았어요. 기획팀을 짜더라도 소극장을 잡게 되잖아요. 지역에는 소극장 자체가 드무니까요. 지금은 지역에 인프라가 조금씩 생기다 보니 대학로에서 공연을 안 한 지가 꽤 되었어요.
예전에 몸담았던 극단 연습실은 봉천에 있었어요. 수도권에 뿔뿔이 흩어져서 사는 배우들이 대부분이었거든요.
극단에 들어갔을 때만 해도 연습실이 따로 없었는데 1년쯤 지나고 봉천에 연습실을 잡았어요. 아무래도 교통 때문이었던 것 같아요. 그때 저는 수원에 살고 있었고 안산에 사는 배우, 광명에 사는 사람, 그리고 동작, 이태원 등… 사는 지역이 흩어져 있다 보니 수도권에 살아도 어쩔 수 없이 연극하려면 일단 서울로 모일 수밖에 없는 게 현실이죠. 왔다 갔다 1시간 반 정도 거리인데 그 정도면 양호하다고 마음을 먹고 있어요.
수원에서 서울로 이동하는 그 1시간, 1시간 반 동안 생각을 많이 하게 되요.
광역버스로 이동하는 그 시간에 오늘은 어떻게 보내 볼까 하는 나만의 순간을 가져요. 그 시간을 활용해서 공연에 관련된 레퍼런스도 많이 찾아보고요. 잠시 서울에 살 때는 잠을 푹 자니 몸은 편한데 어디를 가도 바로바로 도착하고, 나만의 생각할 시간이 없다는 느낌을 받았어요. 지하철을 몇 번씩 갈아타야 했다면 정신이 없었을 텐데, 광역버스는 탑승해서 도착할 때까지 1시간을 내도록 달리니까 큰 창으로 바깥을 바라보면 살짝 여행하는 기분이 들기도 해요.
최근에는 수원에서 만난 예술가들을 조금씩 알게 되었어요.
파견활동을 하면서 처음으로 수원 인접한 지역에 사는 예술가들을 만나봤어요. 미처 몰랐는데 수원에서 활동하는 극단이 있다는 것도 알게 됐고요. 어떤 극단이고 무슨 작품을 하는지는 아직 잘 모르지만 수원에 근거지를 둔 극단이 있다는 것 자체가 신기했어요.
수원 지역에는 청년예술가 한 명이 감당할 사이즈가 아닌 지원사업이 많은 것 같아요.
지역의 예술지원사업을 찾아보면서 느낀 아쉬움들이 있어요.
수원에는 팀 단위, 큰 규모로 진행하는 프로젝트들에 대한 지원은 꽤 있는 것 같은데 저는 아직 그렇게까지 큰 판을 벌릴 수 있는 예술가는 아니라서 제게 해당되는 지원사업들을 더 찾고 있어요. 아예 몇 천만 원, 5천만 원씩 지원을 해 준다거나 또는 축제를 기획해달라, 이런 식의 사업을 많이 봤어요. 이 같은 규모의 사업은 제가 감당하기에는 아직 조금 무섭거든요.
주민을 위한 예술 강좌 외에도, 예술가들을 위한 프로그램이나 워크샵이 수원에도 생기면 좋겠어요.
얼마 전, 이사 간 집 바로 옆에 ‘지동 창룡마을 창작센터’가 있어요. 찾아보니 재밌는 예술활동 수업이 많더라고요. 주로 주민들이 즐길 수 있는 프로그램들인데 예술가들을 위한 프로젝트도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어요. 예술가들을 위한 프로그램이나 워크샵은 대부분 서울을 가야 참여할 수 있다 보니, 지역에도 예술가를 위한 프로그램이 있었으면 좋겠어요.
물론, '서울에 살면서 연기 활동을 한다면 어떨까' 상상해보기도 했죠.
지금은 이사를 한 지 얼마 안 돼서 그 생각이 줄어들기는 했는데 신혼집을 구할 때만 해도 서울에서 살고 싶다는 생각을 많이 했어요. 자연이 좋지만 서울에서도 그런 공간을 찾을 수 있을 거라는 희망을 놓지 않으면서요. 아무래도 이동시간만큼 일을 더 할 수 있을 거라는 생각에 그런 고민이 생겼던 것 같아요. 이동거리가 줄어들면 남들이 공연 2개 잡을 때 나는 3개 잡을 수 있지 않을까 하면서요.
하지만 지금 이사한 수원 집에서 보이는 수원화성 뷰를 포기할 수가 없어요. (웃음)
나의 하루는 이래요.
보통 오전 11시쯤 공연연습 ‘콜타임’이라 집에서 9시에는 출발해야 해요.
오전 7시에 일어난다고 마음을 먹고 사실은 7시 반에 일어난 다음, 9시에 출발해야지 마음을 먹고 또 9시 반에 출발을 하죠. (웃음) 일어나자마자 ‘그것이 알고 싶다’를 틀어 놓고 모든 생활을 시작하는데 요즘 유난히 조용한 걸 잘 못 참겠어요. 그래서 샤워할 때도 영상을 틀어놔요.
외출 준비를 마치면 광역버스 타고 지하철 타고 이동해서 공연 ‘셋업’을 해요. 인형극 공연의 경우 세트의 디테일을 치밀하게 준비하는데 지역 곳곳을 이동하는 공연 치고는 세팅이 빡빡한 편이죠. 1시간 반 정도의 공연이 끝나면 3시쯤 되요. 공연정리, 마무리를 하고 나면 오후 5시인데 보통 집으로 바로 돌아가지 않고 남자친구, 이제는 남편을 만나러 가는 스케줄이죠. 그래서 저도 일 끝나면 남편 작업실이 있는 구로로 갔다가 함께 수원으로 귀가해요. 그때가 오후 10시쯤 되는 것 같아요.
마치 이상향 같은, 나의 예술로 꾸는 꿈이 있어요.
꿈 같은 작업보다는 들어오는 작업을 항상 열심히 하자는 편인데, 그래도 한 가지 욕심이 있다면 70살까지 연기를 하는 게 꿈이에요. 어떤 작품을 하더라도요.
그래서 70살까지는 연기해보고, 그때가 되어서 더 할 지 말 지를 결정하자. 그 이후에 ‘연기는 내 길이 아니다’ 할 수도 있으니까요. 제가 연기를 한 번 그만 둬 봤잖아요? 그때도 분명 난 70세까지 하기로 했는데 왜 그랬을까 자책했었어요. 그래서 이제는 정말, 정말로 70살까지 연기해보자, 다짐하고 있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