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서울 인터뷰

천안에 살며 활동하는데

굳이 서울에서 예술을 해야할까?

하는 생각이다.

나는 1990년생,
천안에 사는 마술사 김일래입니다.


김일래

천안 거주 마술사

마술을 하면 독특하겠다고 생각했어요.

더 솔직하게 얘기하면 공부가 하기 싫어서였던 것 같아요. (웃음) 


천안고등학교로 진학할 때 장학금을 받고 입학했어요. 중학교 때 전교에서 9등, 10등 하다가 고등학교를 가 보니, 저 같은 친구들이 한 400명 있더라고요. 그런데 이게 천안 지역에서만 400명인 거니까 서울의 대학이 되거나 대한민국 또는 전 세계까지 생각한다면 공부는 승산이 없는 길이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고작 고등학생 때요. 


그러던 와중에 마술 동아리를 들어가게 됐고 고등학교 2학년 때, 천안의 마술학원에 정식으로 등록해서 1~2년을 제대로 배우다 보니 마술사로 살아가는 것도 괜찮겠다고 느꼈죠. 지금 제가 속한 회사의 대표님이 제게 마술 가르쳐주신 선생님이세요

마술사를 관두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던 때도 있었어요.

군 입대 직전이었어요. 


군대에 가면 2년 정도는 마술사 활동을 못하게 되니, 제대해서도 이 일을 계속할 수 있을까 하는 고민의 시기가 있었죠. 고민이 깊어지니 다른 일도 좀 해봐야 겠더라고요. 고깃집 알바, 김밥 나라에서 요리도 해보고 서빙도 하고, 뷔페에서 요리하는 일도 했어요. 요식업을 염두에 둔 건 아니었고, 그냥 마술 말고 다른 일을 해서 먹고 살 수 있는지 알고 싶었달까요.


전역 이후에 철이 들었는지 사람 사는 거, 어느 분야나 비슷하겠다 싶더라고요. 마술학원 대표님께 다시 일하고 싶다고 요청 드렸어요. 그렇게 지금까지 계속 마술사로 살고 있네요.

어느 날 아버지가 지도를 딱 펼치시더니 천안을 보시고는 '여기가 대한민국 가운데 네!' 하셨어요.

초등학교 때까지 창원에 살다가 그날 이후 천안에 정착하게 되었죠. 아버지가 하시는 일이 전국을 돌아다니며 진행되거든요. 교통이 중요하셨던 것 같아요.  


지금 제가 일하고 있는 회사는 ‘매직제이 마법학교’라는 천안 소재의 마술학원이에요. 

학원 내에 소극장처럼 꾸며진 공간이 있는데 거기서 연습을 하기도 하고 천안 바로 옆에 붙어 있는 아산이라는 지역에도 연습실이 있어서 두 지역을 오가며 작업을 해요.

사람 사는 게 지역에 따라서 달라지지 않는다고 생각을 했어요.

사실 오늘 인터뷰 자리에 오면서 그 생각을 했어요. 


‘왜 예술이 서울로만 향하고, 나는 지역에 살고 있는데 굳이 서울에서 예술할 이유가 있을까?’ 하는 생각이요. 왜냐하면, 오늘 아침 뭐 드셨어요? 묻는다면 서울에 사는 누군가가 토스트를 먹었다고 해요. 저도 아침에 토스트를 먹기도 해요. 천안에도 이삭 토스트 있거든요. 어제 저녁에는 뭐 드셨나요? 물었을 때, 서울에 사는 누군가는 카레를 먹었대요. 저 역시 3분카레를 사다 먹거나 일본식 카레 전문점에 가서 먹을 수 있어요. 천안에도 다 있으니까요. 


‘지역에 공연 수요가 있나요?’ 하는 질문을 받을 때 마다, 사람 사는 건 똑같기 때문에 자신의 선택에 따라 아침에 토스트 먹고 저녁에 카레 먹는 것처럼 본인에게 어떤 욕구가 있다면 그 지역에서 어떻게든 맞춰 활동하게 되지 않나 하는 생각이에요. 

천안은 전국에서 학교가 제일 많은 지역이에요.

대학교까지 합치면 10개 정도 돼요. 


또 조금만 더 범위를 넓히면 공주교대도 남서울대학교도 가까운 편이니까요.

 지금 제가 하고 있는 일들 중에는 마술을 알려주는 교육분야도 있어요. 마술공연의 특성상 성인보다는 아이들 대상의 공연이 많아요. 그렇다 보니 천안에 수요가 충분히 있는 거죠. 그래서 더욱, 이곳에 나를 불러주는 이들이 있는데 꼭 서울로 향해서 나의 예술을 해야 할까? 하는 의문을 가지게 된 거죠. 


요즘은 소극장 공연을 하고 있어요. 아산의 ‘코미디홀’이라는 공연장에서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라는 마술극에 출연하고 있죠. 그리고 학기마다 학교들에서 연락이 와요. 혹시 진로 교육의 일환으로 마술 교육을 해주실 수 있느냐, 아니면 진로 공연을 해주실 수 있느냐 이렇게 다양한 제안이 들어와요. 사실 서울에서 활동해본 경험이 전혀 없어요. 그래서 내가 서울 지향적인 예술활동의 동향을 이해 못하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들어요.

천안에 소극장이 부족한 것은 사실이에요.

실제로 운영하고 있다고 알고 있는 곳은 한 군데 뿐이에요. 


어르신들을 위한 ‘낭만극장’이라는 곳만 소극장처럼 활용되고 있는 걸로 알아요. 이외에 천안시청 ‘봉서홀’이라든지 박물관에서 운영하는 극장 등, 대공연장을 제외하고 조그마한 소극장은 실로 부족한 편이죠.


아산에는 ‘코미디홀 공연장’이 있는데 그곳은 규모가 200석 정도 돼요. 공연장 자체는 원래 있었는데 관객을 유치하기 어렵다 보니 아산시에서 문화 활성화 사업의 일환으로 코미디 홀 공연장으로 특화해서 작년에 새로 오픈했어요. 그 오픈식을 할 때 

제가 공연을 했었죠.

마술이라는 시장 자체가 굉장히 작아서, 한 다리 건너면 다 지인이에요.

‘저 친구 천안에서 활동하던 친구인데 서울에 와서 활동하네?’ 이런 식으로 서로의 근황을 다 알아요. 


‘저 친구 메뚜기 같은 친구겠구나.’ 하면서요. 그만두고 혼자 마술학원을 차리겠다고 하면 개념이 조금 달라지겠지만 이 지역에서 일하다가 다른 지역 회사로 갔다가, 또 다른 회사로 옮기거나 하면 어디를 가든 환영받지 못하는 존재가 될 수도 있죠.


지금 저희 회사에는 네 분의 마술사가 계세요. 마술공연 기획회사인 동시에 학원도 겸하고 있어요. 그래서 학교로 강의도 가고 학생들이 배우러 찾아오기도 하죠. 충청남도에는 마술학원이 여기 하나거든요. 해서 서산에 가서 공연을 하기도 하고, 바로 옆에 아산에서 강의를 하거나 서울이나 포항에 가서 공연을 하는 경우도 있어요. 전국구의 활동을 하는 셈이에요.

한 물건을 바라보면서 그 물건을 어떻게 하면 다른 형태로 쓸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을 늘 하고 있어요.

예를 들어, 이건 (인터뷰 현장에 있는)녹음기잖아요. 


일반적인 사람은 그냥 ‘녹음하는 역할로 쓰이는 물건이지.’ 에서 생각이 그칠 거예요. 그런데 저는 이것을 나의 마술에 적용시킬 생각으로 ‘녹음기는 녹음을 하는 것이니까, 어디서 특별한 소리를 찾아서 공연할 때 그 소리를 이용해야겠다.’는 생각을 하는 식이죠. 다이소에 가면 접하게 되는 수많은 물건들 중, 가령 우산 꽂이를 보면 사람들은 우산을 꽂는 용도로만 생각하겠죠. 저는 그걸 뒤집어서 겉을 꾸미면 마술사 모자처럼 쓸 수 있겠다 하는 생각들을 끊임없이 하며 살아요.


그러니까 딱 몇 시에 출근하고 몇 시에 퇴근하고, 일을 언제까지 끝마쳐야지 하는 삶이 아니라 계속해서 일에 대해서, 마술에 대해서 일어나서 눈 감을 때까지 구상을 하고 있는 거죠. 그러다 보니 주변에서 ‘너는 참 생각이 특이하긴 하구나, 그걸 그렇게 생각하냐?’ 하는 반응도 있고요. 이런 피드백을 듣다 보면 나는 일반적인 직장인은 아니고 예술을 하는 사람이 맞구나 싶어요. 마술도 분명한 공연예술의 한 장르니까요.

만약, 돈을 더 많이 벌어야겠다고 생각한다면 수요가 많은 서울로 가는 게 맞겠죠.

그런데 저는 돈에 대한 걱정은 별로 안 하고 살고 있어요. 


할아버지께서 지어 주신 이름이 ‘쇠 금, 날 일, 올 래’ 김일래예요. 돈이 매일 매일 들어온다는 뜻의 이름이거든요. 이름이 이래서인지 어릴 때부터 먹고 싶은 거 먹고, 하고 싶은 거 하면서 살 수 있었어요. 내 통장에 한 10억, 100억 있으면 좋겠다는 욕심이 없다는 게 더 맞는 표현이겠어요. 100억이 있어도 내일 아침 똑같이 토스트 먹을 거고, 저녁에 카레 먹고 싶으면 카레 먹을 수 있으면 그만이고, 이런 식이다 보니 어떤 상황이든 그에 맞춰서 살 수 있다는 믿음이 있나 봐요.


요즘의 생계는 회사에서 받는 월급과 그 외의 성과급도 받으면서 유지하고 있어요. 마술 강의와 공연, 이 두 가지의 일이 가장 지분을 차지해요. 마술 학원 선생님으로서 하는 강의, 지역 학교들의 방과 후 수업, 대기업 동아리에 초청을 받기도 하고 기업체 강의도 있고요. 노인복지회관도 가죠.

처음 예술지원 사업에 도전했을 때는 똑 떨어졌어요.

첫 지원서를 준비할 때는 작성할 것도 너무 많고 서류도 꽤 어렵더라고요. 그 당시, 학원의 서류 업무를 제가 도맡고 있던 터라 컴퓨터 앞에 앉아서 밤새 글 쓰고 예산안 잡는 일에 익숙하다고 자부했거든요. 그런데 지원사업에 계속 떨어지다 보니 그제서야 좀 알겠더라고요. 


예술 지원사업에서 원하는, 흔히 얘기하는 인재상이 있구나. 저는 그걸 ‘스탠스’라고 표현하는데 예를 들어 ‘청춘마이크’ 사업에서는 청년예술가들이 열정적인 모습을 보여주길 원할 거라는 스탠스를 캐치해서 거기에 맞는 지원서를 썼죠. ‘저희는 언제든지 공연할 준비가 되어 있습니다. 약 2년 간 연습을 했고 저축했던 돈을 적금을 깨서 연습실을 구했습니다.’ 이런 열의를 잔뜩 표현해서 제출했더니 2019년에서야 ‘청춘마이크’ 심사에 통과했어요. 제가 쓴 지원서로는 처음 선정된 것이었죠. ‘청춘마이크’로는 나주, 청주, 아산에서 공연을 했고요. 

천안을 모티브로 마술 공연을 만든다면, 보는 사람이 편안함을 느끼는 공연을 만들고 싶어요.

천안이라는 지명이 하늘 천에 편안할 안 자를 써요. 하늘 아래 가장 편안한 곳이라는 뜻으로써 ‘천안’이라고 알아요. 공연을 보는 사람이 ‘여기 정말 편안하다.’고 느끼는 작품을 만들어보고 싶어요.


천안은 말 그대로 사람이 살 만한 곳이죠. 살면서 필요한 것은 빠짐없이 있고 서울도 가까운 편이라 일 때문이나 친구를 만날 때도 교통이 편하죠. 대전을 가도 1시간이면 충분하고 바다를 보고 싶다면 역시 1시간이면 삽교나 강진으로 갈 수 있고요. 산도 금방 만날 수 있어요. 내가 원하는 곳으로 이쪽으로도 저쪽으로도 갈 수 있는, 스스로 방향성을 정해서 갈 수 있는 지역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어요.

나의 하루는 이래요.

보통 오전 9시에서 10시쯤 눈을 뜨면 수업과 강의를 위해 작성해야 하는 서류들을 만져요. 그러면 점심때가 되고 밥을 먹으면서 서류 발송 준비를 하죠. 그리고 외부 출강을 나가요. 학교로 출근하는데 아이들 방과 후 수업이니 오후 4시 반까지 수업이 진행되고 교실 정리까지 마치고서 학원 사무실로 향해요. 그러면 오후 5시 정도쯤 되요. 학원 아이들 수업 준비와 실제 수업이 8시까지 이어져요. 학원생들이 대회를 준비하는 기간이면 그 친구들에 대한 보충수업을 하기도 하고요.


일정을 다 마치면 밤 10시가 넘어가요. 다음 날도 학교 강의가 있으니 도구 등을 챙겨놓고 10시 반, 11시 정도에 퇴근하는 편이에요. 중요한 공연을 앞두고는 연습실에서 공연자들끼리 모여 연습을 하고 퇴근하고요. 집에 도착하면 12시가 넘을 때도 있어요. 그때부터 게임을 하거나 넷플릭스, 웹툰이나 유튜브를 보다가 오전 2시에서 3시 사이에 잠이 들어요. 해서 공연이 없는 주말에는 완전히 침대에서만 지내죠.

마치 이상향 같은, 나의 예술로 꾸는 꿈이 있어요.

마술이란 장르는 신기함을 기본 요소로 해요. 마술공연을 본 사람들은 대개 ‘저거 어떻게 했지?’라거나, 갑자기 나타난 비둘기를 보고는 ‘우와’ 탄성을 질러요. 신기하다는 감상이 기반이 되니까요. 그런데 저는 내 마술을 본 사람이 공연 끝에 눈물을 흘렸으면 좋겠어요. 


사실 마술은 신기함 만을 추구하는 게 아니라 여러 공연예술이 섞인 복합적인 장르예요. 음악도 있고 미술적인 부분도 녹아 있고 시각적인 기교도 많고, 무대 연출이라든지 연기도 들어가고요. 


지원사업의 서류에는 ‘이 공연으로 사람들에게 감동을 선사하고 싶다.’ 이렇게 쓰지만 실제로 공연을 올리면 그저 즐거운 마술이거든요. 음악가나 화가, 소설가들이 ‘누군가 내 작품을 보고 감동받았으면 좋겠다.’고 생각하는 것처럼 저 또한 그래요. ‘누군가 내 공연을 보면서 자신도 모르게 눈물을 흘린다면 얼마나 좋을까.’ 하는 꿈이 있어요. 그 어떤 장르보다도 마술은 신기함을 넘어서서 감동을 주는 것이 어려울 것이라고 생각해요. 하지만 언젠가는 꼭 그런 공연을 만들고 싶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