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서울 인터뷰
지역에서부터 시작하는
프리랜서 활동의 경쟁력을 기대한다.
나는 1993년생
광명에 사는 안무가 강승현입니다.
강승현
광명 거주 안무가
서울에 살며 예술활동을 하고 싶다는 생각을 하지는 않아요.
굳이...?랄까요. 광명에서 서울이 그리 멀지 않은 거리이기도 하고 서울에 살면 그만큼 돈이 더 드니까요.
지역에 살아야만 신청할 수 있는 지원사업들도 있죠. 아무래도 지원사업은 서울에 더 많지만 사업이 많은 만큼 지원하는 사람들도 많지요. 그래서 지금의 생각은 서울에서 치열한 경쟁을 뚫으며 활동하는 것보다 내가 광명에서 얻을 수 있는 자원을 활용하면서 작품활동을 해 나가는 게 더 경쟁력 있지 않나 싶어요.
올해부터 안무가로서 프리랜서 활동을 시작했어요. 그러다 보니 점점 예술가들 간의 네트워킹이 중요하다는 생각이 들어요.
무용단에 속해 있으면 공연을 따 내는 건 제 역할이 아니에요. 무용단에 주어지는 공연들에 맞춰서 스케줄만 따라가면 되거든요. 프리랜서가 되면 내가 나서서 프로젝트를 만들거나 기획을 짜기 전까지는 기회가 오지 않아요. 때문에 다른 무용하시는 분들, 외부에서 작업하는 안무가나 무용수들 끼리의 네트워킹이 중요하다는 걸 절실히 느껴요.
올해는 광명문화재단에서 공모한 '청바지'라는 사업에서 지원금을 받게 됐어요.
창작준비와 창작발표과정으로 나뉘어 있어요. 창작준비는 가령 내가 어떤 주제를 잡고 리서치를 하고자 하면 주제에 관련된 멘토링과 리서치에 필요한 금액을 지원받을 수 있고요. 창작발표는 공연을 준비해서 실연까지 진행하는 거예요. 저의 첫 예술지원사업은 지역문화 진흥원에서 주관하는 ‘청춘마이크’ 사업이었어요. 서울숲, 어린이대공원, 최근에는 야탑역 광장에서 공연하기도 했지요. 다음 달에는 안산에서 공연할 예정이에요.
사실 광명이 다른 지역이나 서울에 비해 무용가에게 주어지는 기회가 적은 편 같아요.
하지만 광명문화재단의 ‘청바지’ 사업 면접을 볼 때 느낀 것이 있어요.
광명에 무용하는 예술가가 얼마나 있는지 모르겠지만 내가 앞장서서 광명을 기반으로 활발하게 움직이다 보면 그에 대한 베네핏을 얻을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기대가 생겼어요. 내가 처음 무용을 시작했을 때보다 광명지역에 발레 학원이 꽤 많이 생긴 것 같아요. 분명 교육의 영역에서 무용이 양적으로 확장되면 학부모 분들이 무용에 관심을 가질 수밖에 없어요. 가령 광명에서 춤 공연이 열린다 하면, 무용을 배우는 자녀를 둔 학부모들은 흥미를 가지게 되고 가족들과 함께 공연장도 가거든요.
학원에서 무용을 처음 접한 친구들이 학교를 졸업하고 성장해서 다른 지역에 살게 될 수도 있겠지만, 저처럼 광명에 살고 서울을 오가면서 활동을 해 나간다면 광명에는 무용에 관심을 가진 사람이 그만큼 늘어나는 거겠죠.
한 예로, 부천은 꼭 무용이 아니더라도 비보이 같은 장르의 춤을 추는 사람이 많아요.
그래서 부천 하면 춤추는 사람들이 많이 모이는 도시, 이런 인상이 있죠.
부천이 그런 이미지를 얻게 된 이유야 여럿이겠지요. 제가 알고 있는 분명한 요인은 굉장히 유명한 비보이 팀이 부천에서 오랫동안 활동을 했다는 거예요. 해서, 부천시 대표 비보이 팀으로 명성을 얻게 되었죠. 부천시와 그 비보이 팀이 함께 주최하는 세계대회가 매년 부천에서 열려요. 게다가 비보이 팀이 지역 학교에서 방과 후 활동으로 춤을 가르치기도 한다고 해요. 춤에 관한 활동이 자연스럽게 확산되는 거죠.
일단 무용이 사람들에게 익숙한 느낌이 있어야 해요. 무용 공연은 볼 기회 자체가 드물기 때문에 대중에게 편안하게 다가가야 조금이라도 관심을 갖거든요. 무용하는 자녀가 있는 부모님이 자연스럽게 무용에 주의를 기울이는 것처럼요.
광명에 살고 있지만 무용에 관련한 활동을 정작 내 지역에서는 해보지 못했어요.
무용수로 참여해 안산이나 인천 등 다른 지역에서는 공연한 경험이 있어요.
그런데 정작 광명에서는 무용과 관련된 소식을 많이 접해보지 못했어요. 내가 모르는 걸까 아니면 실제로 광명에 무용 관련한 사업이 드문 건가 고민을 해 보기도 했죠. 광명에서 무용과 관련된 제 활동이라면 최근, 광명 사거리에 홀 댄스 스튜디오가 생겨서 연습할 때 가끔 그곳을 이용하는 정도죠.
대부분의 팀 단위 공연 연습은 서울에서 이루어져요. 서초나 사당을 자주 가는데 국립현대무용단 예술 감독님 작품에 무용수로 참여하게 되면서 서초를 가게 되고 사당은 대여해서 쓸 수 있는 상업 홀 스튜디오가 많아서 주로 이용해요.
대단히 큰 극장이 아니더라도 소극장 같은 발표 공간들이 조금 더 많았으면 좋겠어요.
그리고 무용을 배우는 학생들이 많기를 바라요. 또 내 또래의 무용하는 사람들이 많으면 더욱 좋겠죠. 무용하는 사람이 많고 무용을 배우는 학생이 많으면 그 지역은 이와 관련된 산업이나 공연이 자연스럽게 늘어날 테니까요. 굳이 비교를 하자면 광명은 서울에 비해 무용 산업 자체가 약하죠.
집은 광명에 있지만 활동은 서울에서 하는 것은 예술을 하려면 어쩔 수 없는 것 같기도 해요. 일단 서울에는 예술가들을 위한 일거리 자체가 많으니까요. 지역에 정착해서 그 지역에서만 예술활동을 한다는 건 조금 어려울 수도 있을 것 같아요. 무용에 한정해서 생각해 볼 때, 그것이 가능 하려면 그냥 무용하는 사람들이 많으면 되는 일이긴 하거든요.
때문에 내가 사는 지역, 광명에 예술가 커뮤니티가 생겼으면 좋겠다는 바램이 있어요.
‘청바지’ 사업에 선정되어 오리엔테이션에 갔을 때, 광명지역의 예술가 몇 분을 알게 됐어요. 음악하시는 분이나 그림 그리는 분도 계셨고, 저와 동갑인 무용하시는 분도 있더라고요. 광명지역에 활발한 예술가 커뮤니티가 있으면 좋을 것 같아요. 이제 프리랜서로 활동하다 보니 지역 예술가들끼리 모여서 새로운 걸 만들어 보자는 얘기도 나눠보고 싶어요. 같은 지역에 살면 모이기도 편하겠죠. 혼자서 작품을 만들라 치면 재정적 부담도 크니까 아티스트 여럿이 모여서 시도해볼 수 있다면 조금 더 수월할 것 같고요.
아무래도 혼자서 커뮤니티를 계속 찾아다닐 수 없으니 예술가 네트워크에 대한 아쉬움이 더 큰 것 같아요. ‘청바지’ 사업에는 예술가들 간의 네트워킹 이벤트가 종종 있었어요. 수도권 지역의 예술가들은 그러한 기회를 통해 서로를 알게 되는 경우가 대부분이지 않을까 싶어요.
고등학교때까지 축구를 했어요.
중, 고등학교 시절 내내 축구선수였어요. 대학까지 축구로 진학하려 했는데 부상으로 무릎 수술을 하게 되면서 선수로서의 미래를 그리기 어려운 상황을 맞았어요. 그때부터 진로 고민이 시작됐죠. 어릴 때부터 예술하는 친구들이 멋있어 보였거든요. 나도 예술 계통을 배우고 싶긴 한데 정작 뭘 해야 될 지 모르겠는 거예요. 그러다 TV 프로그램에서 현대무용이란 것을 처음 접하게 되면서 ‘난 운동을 했으니 무용도 똑같이 몸 쓰는 거니까, 그나마 내가 접근해볼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조금은 단순한 생각으로 시작했어요. 그게 21살 겨울이었네요.
무용을 시작하기에 늦은 감이 없진 않죠.
무용학원 원장 선생님께 무작정 상담 메일을 보냈어요. 내가 현재 이런 상태이고 나이는 21살인데 무용으로 입시를 치를 수 있을까요? 물으니 가능 하대요. 그래서 전 단순하게 그 ‘가능’만을 믿고 학원을 등록했어요. 그 해 내내 입시 준비를 하고 23살부터 대학에서 무용을 전공했죠. 제가 입시를 준비할 때만 해도 광명시에 현대무용학원이 없었어요.
아마 요즘도 무용 입시를 준비할 수 있는 학원이 없는 걸로 알아요. 그래서 입시준비를 위해 서울 송파구에 있는 학원을 다녔어요. 집에서 출발해서 딱 1시간 반 정도 걸려요. 학원과 집 사이를 왔다 갔다 하기 힘들어서 1년 동안 아예 학원에서 숙박을 했어요. 학원에서 먹고 자고 하니까 원장님이 ‘너 여기 사무실에 있는 TV랑 세탁기, 수건 같은 것들 편하게 써라’ 하시면서 접이식 침대도 사 주셨어요. 1년의 입시준비기간 내내 학원에 붙박여서 살았던 거죠. 주말에만 잠깐 광명집에 들르면서요. 그렇게 무용학과에 입학했어요.
대학을 졸업하고는 유럽의 무용씬을 경험해 보고 싶어서 1년 3개월 정도 외국에서 지냈어요.
유럽을 돌아다니며 오디션도 보고 워크샵도 들으며 지내다가 다시 한국으로 돌아와서는 3년정도 무용단 활동을 했어요.
제가 다녔던 입시학원이 무용단의 단원 선생님들끼리 만든 곳이었는데 귀국해서는 그 학원에서 학생들을 가르치면서 무용단 활동을 병행했어요. 28살부터 서른까지 그렇게 생활하다가 올해 1월, 그곳을 나와서 이제는 프리랜서 안무가로 작업하고 있어요.
예술가로서, 내가 사는 지역으로부터 받은 영향이 분명 있을 거에요.
광명은 한편 평온한 느낌이고 다르게 표현하면 심심하고 재미없게 느껴질 수도 있는 도시에요. 예를 들어 서울의 홍대처럼 젊은 사람들을 위한 즐길 거리나 다양한 문화활동을 접할 수 있는 지역은 아니니까요. 오히려 직장 다니는 부모님과 아이들, 가족단위가 많이 사는 지역 특유의 따듯한 느낌은 있어요.
제 동네 친구들과 다른 지역에 살았던 친구들을 비교해봤을 때 내가 사는 지역의 사람들은 드센 느낌이 없고 그냥 덤덤한 느낌? 사람들이 공격적이지 않다는 인상을 받기도 해요. 광명에서 보낸 제 유년기가 유난스럽거나 힘들지 않았기 때문에 더 그런 느낌을 갖는지도 몰라요. 그 시절을 되돌아보면 친구들이랑 축구하고 운동하며 놀았던 기억이 가장 먼저 떠오르거든요. 여기 광명시 안에서 많이도 돌아다니며 놀다 보니 친구들과의 추억이나 가족과의 기억은 다 광명에 있어요. 할머니 할아버지도 여기 사시거든요. 그런 기억들 때문인지 광명은 어디를 가도 편안한 느낌으로 다가와요.
안양천을 유난히 좋아해요.
제가 어렸을 때는 요즘처럼 조경이 잘 되어있지는 않았어요. 지금은 꽃도 많이 심어져 있고 나무며 길도 굉장히 잘 꾸며져 있어서 산책하기에 좋아요. 철산역 상업지구도 좋아하고요. 대부분 어렸을 때에 자주 갔던 공간들을 다시금 좋아하게 되는 것 같아요.
광명을 모티브로 내가 작품을 만든다고 하면 어떤 느낌의 작품이 나올까요?
어린시절부터 광명에 살았으니 내 모습, 내가 광명에서 자라왔던 모습을 담은 작품을 만들 것 같아요.
무겁거나 진지한 느낌을 걷어 내고 누구나 편안하게 볼 수 있는 무용작품을 만들고 싶어요. 무용 공연이 열리면 대부분 무용하는 사람들이 관객으로 오거든요. 그 때문인지 작품이 어렵거나, 어둡거나, 또는 난해한 공연이 많아요. 그런 작품은 무용을 처음 보는 사람이나 애초에 무용에 관심이 없던 사람이 보게 되면 상당히 지루할 수 있어요.
때문에 제가 광명을 모티브로 작품을 만든다면, 일단 가장 큰 전제는 무용을 처음 보는 광명시민을 대상으로 작품 구상을 할 거에요. 편안하고 부담없이 볼 수 있는, 극장에서 봐도 괜찮고 공원이나 안양천에서 봐도 괜찮은, 광명시 어느 공간에 그 작품을 올려 둬도 이질감이 없는 작품을 만들거에요.
나의 하루는 이래요.
요즘은 오전 10시쯤 일어나요.
눈 뜨자마자 휴대폰 확인하고 미숫가루 한잔 마신 다음 씻고 연습복 챙겨서 바로 나가죠. 11시쯤 집에서 출발해요. 자전거 타는 걸 좋아해서 광명시 전기자전거가 집 주변에 있는지 확인해 보고요. 전기자전거로 철산역까지 가서 지하철을 타고 내방역으로 간 다음 406번 버스로 환승, 예술의 전당에 도착해요.
예술의 전당에 속해 있는 공간에서 공연 연습을 진행하는데 연습은 1시부터 6시까지 이어져요. 다른 공연이 잡혀 있다면 6시 이후에 또 다른 연습실로 이동해서 연습을 진행하기도 하고요. 몸을 쓰는 작업이다 보니 연습과 연습 사이에는 간단한 과자나 간식 정도를 먹는 편이에요. 집에 도착하면 9시 반에서 10시쯤 되지요. 그때서야 씻고 밥을 먹고 새벽 2~3시쯤 잠들어요.
마치 이상향 같은, 나의 예술로 꾸는 꿈이 있어요.
스치듯 혼자만의 생각으로는 나의 첫 작품을 공연했을 때, 지금보다 더 어렸던 나이의 내가 느꼈던 것, 또 다른 작품에서 그 나이대의 내가 느꼈던 것, 그리고 또 나중에 좀 더 나이가 들고 늙어가면서 하게 될 작품들. 그때 그때의 내가 느꼈던 것들을 한 작품안에 담은 공연을 만들어 보고 싶어요. 이것은 태어나서 자라고 나이가 들고 늙어가는 인생 전체를 훑는 스토리가 아니에요. 제가 그 각각의 시간속에서 느꼈던 것들을 한 작품에 온전히 담은 공연을 만들어보고 싶다는 생각이에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