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서울 라운드 테이블

비서울 내부 라운드


비서울의 시작

옥민아 | 아직도 청년동에 처음 왔던 날 생각이 새록새록 납니다. 


저는 공간이 너무 좋다고 눈이 막 휘둥그레졌었죠. 그때만 해도 이렇게까지 자주 광명에 오게 될 줄은 몰랐어요. (웃음) 프로젝트를 제안받았던 첫 메일을 다시 읽어봤는데 그 당시의 내용은 “광명의 청년예술가들을 스무 명 가량 인터뷰하고 싶다. 그래서 책을 내고 싶다.”였어요. 이후에 만나서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우리가 그저 예술가들을 만나서 인터뷰하는 것으로 그친다면 큰 의미가 있겠냐는 물음으로 이어졌죠.


지역이나 대상자(청년예술가)를 광명에 국한하지 않는 쪽으로 해보자. 다양한 청년예술가들을 만나자. 인터뷰 이외에 예술 작품으로도 풀어보고, 다 같이 모여서 토론도 해보자. 이 설계를 하는 데 두 달 정도가 걸렸고, 이제는 한 해를 마무리하면서 비서울 프로젝트도 함께 마무리하는 시점이 되었네요.



비서울 프로젝트를 만든 이들의 내부에서 일어난 '비서울' 이라는 개념의 변화

정재원 | 민아 님이 첫 회의를 하러 오셔서 한 이야기가 “그런데 광명은 전화번호 앞자리를 02를 쓰네요?”였어요. 

서울과 지역번호를 공유하지만 같은 지역으로 취급되지 않는 괴리를 깨달으면서 프로젝트를 확장하게 됐고 그 과정에서 비서울이라는 개념이 탄생했죠. 

저는 비서울이 널리 전파되거나 모두의 공감을 이끌어나가는 담론이 되는 데에는 시간이 필요하다고 생각해요. 그럼에도 라운드 테이블까지 진행을 해보고 나니 

조금씩 확신이 생긴다고 해야 할까요? 라운드테이블의 참여자들로부터 다양한 반응이 나왔는데 제가 느끼기에는 비서울이라는 이름이 사람들 

마음의 한 부분을 흔들었던 것 같아요. 처음에 기대했던 것보다 큰 담론이 될 수 있겠다, 앞으로 더 키워가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최은정 | 아 기획자님이 처음 비서울의 개념을 제시했을 때는 제 안에서 소화되지 않은 듯한 감정이 느껴졌어요. 

자존심이 상했죠. 내가 왜 이 말을 듣고 기분이 나쁠까? 논산에서 태어나서 연극을 해보겠다고 대전과 서울로 버스를 타고 다니면서 했던 생활, 

그리고 서울에 올라와서는 계속 거처를 옮겨 다니며 살 수밖에 없었던 나 자신을 떠올렸어요.


또 사업 담당자로서 비서울을 대하면서는 왜 광명시에서 하는 청년예술가 리서치 프로젝트인데 이 이름을 달아야 되는 건지 하는 의문이 들었죠. 

생각의 흐름을 화살표로 그리면 결국 서울로 향하고 있는 게 아닐까 싶기도 했어요. 


그래서 저는 이 프로젝트가 청년예술가들의 애환을 펼치는 장이 되는 방향은 피하고 싶었어요. 

“이런 건 서울에만 많아요, 우리 지역에도 생겼으면 좋겠어요.”라는 이야기로 귀결되는 것이 아니라, 비서울의 슬로건처럼 

정말 내가 존재하는 이곳이어도 괜찮다가 아닌, 이곳이어서 좋다는 감각을 찾을 수 있길 바랐죠.


사업을 진행하면서 이 프로젝트를 둘러싼 다양한 개인의 시선이 모이는 것이 제게는 정말 흥미로웠어요.

 비서울은 누군가에게는 자격지심, 누군가에게는 뛰어넘어야 할 현실이었고, 또다른 이에겐 할당된 자리와 고정된 역할속에서

 계속 무너지더라도 언제든지 무게중심을 바꿔가며 직립하는 과정이었어요.


옥민아 | 지역의 청년예술가라는 건 반사적인 개념으로서 서울이 존재하기 때문에 탄생한 것이지요. 

그렇기 때문에 서울을 빼놓고 이야기할 수 없겠다고 판단했어요. 또 이런 노골적인 점이 홍보에 도움이 될 수 있겠다는 고려도 있었고요. 

선창하듯 고의로 도전적인 타이틀을 제시한 다음 “어? 이거 좀 기분 나쁜데요.”라는 반응이 오면 사실 우리의 목표는 그런 뜻이 아니라고 온 마음을 다해서, 

단어나 말투까지 신경써가면서 답변을 정했죠. 정교한 프로젝트를 만드는 것 이상으로 누군가가 공감할 수 있는 이야기를 담기 위해 노력했습니다.



한 해 동안 비서울 프로젝트를 진행하며 가장 의미 있었던 순간

조승엽 | 포럼에서 들었던 이야기 하나가 기억에 남아요. 

참여자분께서 본인 자신도 지역성에 관한 고민을 하는 중이라 어디선가는 이야기로 풀어주기를 바랐다고 말씀하셨는데 

저는 그 발언이 기획 의도와 정확히 맞닿은 피드백이라고 느꼈어요.


특히 제가 비서울에서 주로 맡았던 역할이 인터뷰들의 녹취와 편집이었는데 원고를 정리하기 전의 가장 큰 우려는 의견의 편향이었어요. 

“당연히 서울이니까 서울 가는 거지, 메리트가 다 거기 있는데.”라는 명백한 반응이 대다수가 되면 곤란하지 않을까 싶었는데 인터뷰를 풀어보니까 

그게 아니었죠. 딱 반반을 쳤던 것 같아요. 나는 가능하다면 무조건 서울행을 선택하겠다, 아니다 나는 딱히 상관없다, 이렇게 두 의사가 

평형을 이룬다고 느꼈을 때 이건 얘기해볼 만한 거리가 맞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정재원 | 저는 프로젝트 설계 과정 중 비서울을 대표할 로고를 결정했던 날이 기억이 나요. 로고 디자인 후보들을 인쇄해서 회의실에 펼쳐 놓고, 

접어서 봤다가 펴서 봤다가 하면서 한참을 골랐잖아요. 그때 저희가 다 함께 이것저것 해보면서 프로젝트의 내용을 구축해 가는 과정이 참 좋았어요. 

비서울이 마무리되는 시점까지 일관적인 톤 앤 매너를 유지할 수 있었던 것도 이 같은 합의의 과정에서 우리가 전달하고자 하는 개념, 이미지의 방향 등이 

잘 정리되었기 때문인 것 같아요.

 

옥민아 | 저는 이런 프로젝트를 할 때 정말 중요하게 생각하는 점 중 하나가 일단 만드는 사람들이 재미있어야 된다는 거예요.

아무리 결과물이 좋아도 서로 쥐어짜내고 피를 말려가며 무언가를 함께 하는 건 피하고 싶었어요. 프로페셔널한 태도가 아닐 수도 있지만 

저한테는 결과물의 완성도보다도 프로젝트에 속한 사람들이 이 과정 자체에 점점 애정을 쌓아가는 게 더 중요해요. 다행히 회의를 하면서나 

지금의 결과들을 만들어가는 과정들이 너무너무 재미있었고 저에게 의미있는 순간이었어요. 



지역 예술가들에게 필요한 것, 이라고 깨달은 것

정재원 | 저는 결국에는 관객이라고 생각해요. 


어떤 곳에 아무리 좋은 공간, 작업실이나 네트워크가 마련된다고 해도 거기에 작품을 보러 올 사람들이 없으면 예술활동이 유지되지 않을 거예요. 

그래서 결국 예술가들이 서울로 발걸음을 돌리는 요소가 있다면 그건 관객일 거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또 단순히 서울이 인구가 많고 지역은 상대적으로 인구가 적어서 관객층의 차이가 난다고 볼 수도 없을 것 같아요. 

지역에서 어떤 콘텐츠나 인물을 팔로우하거나 상호작용할 수 있는 숫자를 어떻게 늘릴 지에 대한 고민을 많이 하게 됐어요. 

 

최은정 | 올해 광명문화재단 관계자 분들이나 광명 외부의 문화기획자 분들을 만나면서 들었던 얘기들 중 하나는 지역에 대형 극장들은 있는데 

소극장이 부족하다는 거예요. 제가 만났던 한 기획자 분께선 청년예술가한테 가장 중요한 건 ‘작은 성공을 맛보는 것’이라고 말씀 하시더라고요. 

그 작은 성공을 맛봐야 포기하지 않고 계속해서 다음 스텝으로 나아갈 수 있다고요. 


그래서 청년예술가들에게 어떤 아이디어가 있을 때 그것들을 시도해볼 수 있는 만만한 판이 많이 마련되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적당한 크기의 극장, 소규모의 지원을 받아 아이디어를 실험해 볼 수 있는 기회 같은 것들이요. 

 

옥민아 | 비서울 인터뷰를 통해 만났던 분의 이야기가 생각나요. 

지역에 예술학교가 생기면 그 학교를 중심으로 다양한 산업이 발달한다고 하시더라고요. 연습실도 생기고, 학생들이 공연할 수 있는 작은 공연장이나 

악기상, 학원이 들어오기도 하고요. 또 해당 학교 학생들이 공연을 하면 그 학생들의 부모님들이 관심을 갖고 공연장을 찾게 된다는 거예요. 

그래서 지역에 예술 교육기관이 들어서는 것도 청년예술가를 위한, 혹은 지역의 예술씬을 위한 좋은 방법이 되겠다는 생각이 들어요.



내년의 비서울 프로젝트를 상상하다

조승엽 | 저는 비서울 메이킹으로 인해 탄생한 다섯 작가의 예술작품이 이번 프로젝트의 큰 업적 중 하나라고 생각해요. 

물론 비서울 인터뷰를 통해 지역 청년예술가들이 자신의 이야기를 할 판을 마련했지만, 비서울 메이킹 작가 분들의 작품을 보면서 

이 사람들한테는 이 편이 자기 이야기를 더 잘 풀 수 있는 방법일지도 모르겠다는 느낌을 받았어요. 예술가들이니까요. 

그래서 내년에도 비서울 메이킹은 꼭 진행되면 좋겠습니다.

 

옥민아 | 비서울 메이킹을 작가 5인 말고 디렉터 5인으로 설정해봐도 괜찮을 것 같아요. 

디렉터 한 명은 우리가 이번에 했던 것처럼 비서울 메이킹 전시를 기획해서 하나를 할 수도 있고, 더 포괄적인 역할을 수행해 보는 거죠.

그래서 각각의 디렉터를 통해 프로젝트가 번질 수 있도록 하고, 그 과정에서 더 많은 네트워킹이 일어나도록 해보고 싶어요.



올해의 비서울에게 안녕을 고하며

조승엽 | 진행과정에서 다양한 일들을 겪었는데 종료 단계까지 올 수 있었다는 게 반갑기도 하고, 무사히 마칠 수 있다는 사실이 기쁩니다. 

개인적으로 스스로한테 좋은 자극을 줄 수 있는 프로젝트라서 좋았습니다.

 

최은정 | 저에게 비서울이 준 가장 큰 행운은 올해의 귀인 두 분, 민아 님과 승엽 님을 만난 것이에요. 

새로운 누군가에게 어떤 제안을 한다는 일엔 늘 어느 정도의 두려움이 있어요. 다행히 마음이 맞는 두 분을 만나서 비서울 프로젝트를 

이렇게까지 해낼 수 있었던 것 같고 그게 가장 감사해요.

 

정재원 | 어쨌든 올해의 한 사람을 뽑으면 역시 은정 님이 아닐까요? 그 많은 스케줄을 모두 감당하셨으니까요. 

또 은정 님에게는 끝이 보이는 달리기이기도 했으니까 저와는 다른 느낌도 받으셨을 것 같고 어쩌면 시원섭섭한 감정도 느끼실 것 같아요. 

마무리할 때쯤이 되니 새삼 아쉽기도 하고 앞으로 비서울 프로젝트를 통해 더 좋은 시간을 보낼 수 있었으면 좋았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옥민아 | 디테일한 것들, 신경쓸 일들이 굉장히 많았어요. 

인터뷰에 메이킹에, 촬영 감독님, 편집하는 사람, 라운드 테이블에 올 참여자들을 관리하는 등... 

너무나 많은 일을 감당해주신 은정 님이 없었다면 절대 이런 형태로 이 프로젝트를 마무리할 순 없었을 것 같아요. 

꼼꼼하게 원고 편집해 준 승엽 님에게도 감사드리고, 비서울에 더 큰 의미를 담을 수 있도록 공공기관으로서는 도전적일 수 있는 결정들을 

끊임없이 내려주신 재원 님도 너무 고생하셨고 감사합니다. 


참석자 | 정재원(총괄)  옥민아 (책임기획)  조승엽(아카이빙 디렉터)  최은정(프로젝트 디렉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