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24 INTERVIEW | 김태훈
"돈 못 벌어도 재밌으면 예술할 수 있잖아,
저는 그런 얘기 안 믿어요.
23살에 1학년이 됐어요.
스무 살에 입학했던 학교가 마음에 안 들어서 입시를 여러 번 했거든요. 반수를 해서 한양대 에리카를 갔다가 다시 또 입시를 준비해서 경희대학교에 입학했어요.
중학교 1학년 때부터 *비보이(B-boy, 힙합 문화,
특히 브레이크댄스에 몸을 바치는 남성) 활동을 했어요.
대학에 갈 생각도 없었고 완전 춤만 췄어요. 원래 그렇게 끈기가 있는 편이 아닌데 중1 때 시작한 비보이를 고등학교 마칠 때까지 6년 내내 한 걸 보면 춤이 정말 재미있었나 봐요. 고등학교 3학년이 되니까 갑자기 대학에
가고 싶어지더라고요. 공부를 해놓은 것도 아니고 미리 준비해놓은 것도 없는데 말이에요. 그런데 같이 비보이 했던 친구 중 하나가 무용을 하고 있더라고요. 나도 한 번 해볼까 싶어 학원에 등록했는데 원장님이 바로 한국무용을 시키셨어요. 비보이를 하기에는 현대무용이 조금 더 도움이 많이 돼요. 테크니컬한 부분이 서로 맞거든요. 그런데 제 다리를 보고 한국무용을 시키신 거라고 해요. 현대무용은 몸 라인이 중요한데 제가 다리가 좀
두꺼워서요. 운동을 안해도 몸이 좀 통짜예요. 한국무용은 기본 복장이 한복이라 라인을 변형할 수가 있죠.
비보이의 춤은 체계적으로 형식이 정해져 있다는 느낌은 아니에요.
반복 연습을 통해서 자기만의 느낌을 찾아가는 과정에 집중하죠. 물론 기술에 있어서는 어느 정도 체계와
형식이 있어요. 그런데 무엇을 더 중요시하느냐의 문제에서 댄서에게서 자기만의 색깔과 느낌이 나오는가가
더 중요해요. 그래서 무용을 할 때는 느낌이 완전히 달랐어요. 어떠한 체계를 기초로 해서 교육이 들어오니까 배우는 내용들이 하나하나 재밌었어요.
대학에 처음 들어가서는 사실 실망했죠.
여러 가지를 배우고 볼 거란 기대를 했었거든요. 제가 들어간 학과의 교수님께서 퇴임이 얼마 안 남으신 시점이었어요. 제가 느끼기에는 강의에 굉장히 열성이시진 않았죠. 가령 수업에 외부 강사를 쓴다고 하면 저는 학생들을 위해서라면 현역으로 활동하는 사람을 불러서 수업하는 것이 맞다고 생각해요. 그런데 본인의 제자라는
이유로 현역에서 은퇴한 사람을 쓴다든지 하는 모습들이 다소 실망스러웠어요. 다른 학교에서 같은 시간을
보내면 어쩌면 더 많은 것을 얻을 수 있지 않을까 싶었어요.
한 번 생각을 먹으면 잘 바뀌지 않는 타입이에요.
부모님께 제가 느낀 부분들을 말씀드리고 입시를 다시 하기로 했어요. 큰 결심이란 생각도 안 했어요. 자퇴를 한 것도 아니었고, 휴학을 하고 시험만 한 번 더 본 거니까요. 21살에 다시 입시준비를 했고 그렇게 겨울이 왔는데 결과가 좋지 않았어요. 그때는 뭐, 모든 걸 잃은 기분이었어요. 멀쩡히 다니고 있던 학교를 휴학하고 돈 많이 든다는 반수를 했는데 안 됐으니까요. 한두 달 친구들이랑 술만 먹고 지내다가 22살에 또 입시를 준비해서
다음해 경희대학교에 입학했습니다.
새로운 학교는 제가 생각했던 것들을 제게 줬어요.
다른 학교에서의 시간이 나의 성장속도에 질적으로 다른 영향을 미칠 것이라고 여겼던 그런 부분들을 많이
채워줬어요. 함께 지내는 주변 사람들도 그렇고 강의나 강사의 퀄리티도 더 높다고 느꼈죠. 주변에 있는 사람들한테 영향을 받으면서 인간적으로도 많은 걸 배웠다고 생각해요.
교수님따라 수업방식이 다른데 대체로 그룹 레슨이랑 비슷해요.
무용과는 일반적으로 남자보다 여자가 많아요. 제 학과만 해도 저희 교수님 쪽에는 남자가 저를 포함해서 세 명뿐이에요. 저는 일단 학부는 졸업했으니까 학부생만으로 하게 되면 남자는 두 명밖에 없고 여자는 한 학년에 11~12명 있어요. 저는 개방적인 성격도 아니었고 나이도 다른 학생들에 비해 조금 더 들었다 보니 학교 다니면서는 춤만 추고 술만 먹었어요. 많이 외로웠죠. 여기저기서 요즘 석사는 학사라는 소릴 너무 많이 들었거든요? 그래서 대학원까지 가서 무언가를 더 배워야겠다고 생각했어요.
무언가를 할 때 항상 잘하고 싶다는 마음이 1순위였어요.
비보이를 할 때도 그랬죠. 잘 하고, 튀고 싶었어요. 춤이라는 게 누군가에게 보여주기 위해 추는 것이니까요.
그런데 제가 지금 나이를 대단히 많이 먹은 건 아니지만 살면서 사람들도 만나 보고 하다 보니까 잘하는 것만으로는 부족하다는 걸 느끼게 돼요. 언뜻 필요 없어보이는 일들도 할 수 있어야 되고, 학연이나 지연에 의해
작용되는 것들도 많고요. 예술을 잘한다, 못한다 가리기가 추상적이기는 해요. 체육이라고 하면 능력치가
수치나 기록으로 보일 텐데 말이에요. 그래도 저는 항상 1등을 하고 싶었죠.
그런 면에서 지금의 저는 30% 정도인 것 같아요. 대회에 나가 입상을 한다든지 하는 식의, 대외적으로 평가
받을 수 있는 결과물을 많이 못 내놓았다고 생각해요.
콩쿠르의 세계에서는 콩쿠르에서
내야 하는 춤의 냄새가 있어요.
이런 건 대학에서 가르쳐 주지 않죠. 본인이 파악해야 하는 부분이에요. 춤을 추는 사람의 성향에 따라서도
다르지만 저는 종종 주변에서 콩쿠르용이 아니라는 얘길 해요. 외적으로 일단 콩쿠르에서 유리한 기준을
벗어나요. 키가 크지 않고 얼굴도 이목구비가 진하고 뚜렷한 편이 아니에요. 인상으로 따지자면 운동했었냐는 질문을 많이 받는 그런 느낌이에요. 전체적으로 혼자 무대에서 춤을 출 때 가장 돋보이는 사람이 있어요.
저는 그런 스타일은 아니에요. 콩쿠르보다 다른 종류의 공연에서 더 빛날 수 있는 부분이 많죠.
보통 1년에 20명 정도의 무용을 하는 남자들이 콩쿠르에 도전해요.
대회가 두 개에요. ‘동아무용콩쿠르’, ‘전국신인무용경연대회’ 이렇게 있는데 이 두 대회에서 대상을 수상하면 예술 근무요원으로 군복무를 대체할 수 있죠. 상반기인 3~6월에 개최가 되어서 빨리 준비하는 사람들은 그 전 해의 8~9월 정도부터 준비를 시작해요. 보통은 11월에서 12월 사이에 연습에 들어가고요. 일반부는 5분 동안의 독무를 준비해요. 춤 안에 무용수가 담고자 하는 이야기를 만들죠. 안무는 그때그때 배우고 있는 선생님께 받기도 하고 따로 비용을 지불해서 작품을 받기도 해요. 개개인의 차이가 있겠지만 작품비는 천차만별인데
500만 원부터 2천만 원까지 하는 경우도 있다고 들었어요. 레슨비가 별도고 1시간에 5만 원, 보통 1회에 2시간 정도 진행이 되니까 회당 10만 원이 들어가요. 여기에 의상비가 또 별도입니다. 의상 선생님이 따로 맞춰 주시는데 살짝 골때리는 게 본선을 못 올라가면 그 의상을 못 입고 그냥 날리는 거예요.
의상이 또 일반 한복이 아니거든요.
한복의 어떤 형태를 유지하기 위한 그런 것보다 무용을 하는 사람들은 소매 등이 잘 날려야 한다든지 특징들이 있어요. 옷을 염색한다거나 여성의 경우는 머리 장식을 추가하거나 하면 비용이 더 들기도 해요. 이것도 물론 개인차가 있어요. 의상도 맞춤 제작을 300만 원에서 800만 원 정도 선에서 받게 돼요.
여기에 음악 제작비용을 더하죠. 저의 경우 총 1,500~2,000만 원 정도가 든 것 같은데 이것도 많이 안 쓴 편이에요. 특히 이번 콩쿠르에선 본선 진출을 실패해서 의상도 못 입어봤습니다. 이러나저러나 무용은 돈이 많이 드는 게 맞아요.
옛날에는 그저 즐거워서 췄던 춤이 지금은 제 돈벌이 수단이 됐어요.
특히 올해부터 생각이 바뀐 부분들이 있어서 지금은 좋아서 춤을 춘다는 느낌보다 돈이 돼서 춤을 추는 느낌인 것 같기도 해요. 단타로 춤 공연 행사들이 있으면 스케줄에 맞춰 연습한 다음 당일에 가서 공연을 하고 행사
페이를 받아요. 저희는 그걸 보통 ‘오부리 공연’이라고 해요. 정확히 뜻을 설명하기는 좀 어렵지만 아마도 별로 중요하지 않다고 여겨지는 공연이나 돈을 벌기 위한 것이 주 목적인 공연을 그렇게 표현하게 되는 듯해요.
주로 소개를 통해 섭외가 되는데 서울에서 하는 건 거의 없어요. 지역 축제들, 예를 들면 인삼축제 같은
지역행사 위주로 가고 있어요.
“난 겁나 멋있어.”
항상 그랬어요. 춤을 추고 있는 순간 제 자신이 멋지다고 느껴요. 요즘 일반인을 대상으로 한 춤 수업에서
강사로 일하고 있어요. 그 곳이 인스타그램으로 홍보를 하고 있는데 계속 하다 보니까 저도 조금 그쪽에서
유명해졌어요. 사람들이 보고 댓글도 남기고 하는 걸 보면서 기분이 좋더라고요. 홍보물로 제가 춤추는 모습이 올라오는데 제가 봐도 좀 멋있게 잘 찍혔어요. 그래서 그 영상들 가끔씩 다시 들어가서 봐요. 춤에 있어서는
어디 내놔서 춤 못 춘다 소리는 안 들을 자신이 있어요.
다만 요즘의 저의 상태가 옛날처럼 불타오르는 그런 느낌이 아니라는 거예요.
어쩌면 다시 그렇게 타오르기는 힘들 것 같기도 해요.
돈 못 벌어도 재밌으면 예술할 수 있잖아,
저는 그런 얘기 안 믿어요.
돈을 못 버는데 어떻게 예술을 해요? 먹고 살 수 있어야 예술도 할 수 있는 거라고 생각해요.
어릴 때야 부모님의 도움을 어느 정도 기대할 수 있고, 물론 지금도 주변에서 항상 도움은 받고 있다고
생각하지만 저처럼 예중, 예고가 아니라 인문계 학교를 다닌 친구들은 벌써 사회에서 자리를 잡고 회사를
다니고 있죠. 친구들을 보고 얘기를 들으면서 ‘현타’가 와요. 저는 계속 누군가에게 도움을 주지 못하는
입장인 것 같은데 이대로 더 오래 버텨야겠죠. 춤을 추는 수많은 사람들이 아마 저와 비슷할 거예요.
아직 해결되지 않은 군대 문제로 인해
활동에 제약이 생기는 부분이 있어요.
프로젝트로 하게 되는 공연이 보통 멤버 구성이 된다고 바로 시작하는 게 아니거든요. 준비를 들어가서 보통 3~4개월, 길면 6개월 뒤에 공연이 시작되는 경우도 있는데 언제 군대를 가야 할지 불확실하니까 지원을
하기가 애매해요. 뽑는 입장에서도 안전하게 군필자를 우선으로 뽑으려고 하거든요. 그래서 요즘은 군
문제를 해결하는 게 급선무예요. 군악대에서도 춤 추는 사람을 뽑는 경우가 있다고 해요. 그것도 TO가
있어야 지원이 가능하긴 하지만 그래도 제 상황에 맞게 군생활을 할 수 있어서 알아보는 중입니다.
그렇게 꿈이 큰 편은 아닌 것 같아요.
제가 출 수 있는 춤을 추면서 아이들도 가르치고, 다만 늘 무대 위의 플레이어로 남고 싶어요. 제가 원래 목표를 크게 잡는 편이 아니에요. 생각은 현실적으로 하는 쪽이라서요. 서비스업이라든지 다른 직장을 갖고 사는 것도 상상은 해봤지만 그러다가 다시 돌아올 것 같아요. 이미 지금의 삶을 경험해 봤기 때문에요.
그렇게 해본 건 아닌데, 저 말고 다른 사람들 중에 그랬던 경우를 몇몇 봐왔어요.
청년예술가들에게 조금 더 현실적인
지원들을 많이 해줬으면 좋겠어요.
‘예술활동준비금지원’을 제외하고는 정말 크게 도움이 된다고 느꼈던 지원금 제도가 많지 않았거든요.
연습을 하고 생활을 하기 위해서 돈이 필요한데 일단 생활부터가 안 되기 때문에 자기가 하고자 하는 예술을
포기하고 돈을 벌러 나가야 하는 예술가들이 많은 것 같아요. 작은 지원이라도 생활에 보탬이 되면 조금 더
제가 하고자 하는 일에 쓸 시간이 많아지지 않을까 생각해요.
나중에는 지방에 있는 무용 단체에 들어가서
발을 걸쳐 놓고 농사 지으면서 살고 싶어요.
그곳이 국공립이든 사립이든 무용단체에 소속된 채로 자연에 살고 싶달까요. 춤으로 유명해진 삶도 물론 꿈에 그리는 모습 중 하나지만 요즘은 사실 사람들에게 지칠 때가 많아요. 머리 싸매고 경쟁하고, 또 생각보다 보수적인 지금 저의 사회에서 살아남으려고 노력하고 있어요.
그래서 시간이 지난 뒤엔 마음 편하게 무용단에 한 다리 걸쳐 놓고 일이 있으면 출근하고, 퇴근해서는 바다도 보고, 요가도 하면서 살고 싶습니다.
저에게 겨울은 늘 추운 계절이었습니다.
특히 스무 살의 겨울을 너무 춥게 보냈어요. 그렇다 보니 날씨가 쌀쌀해지면 두려워요. 입시를 세 번이나 했고 콩쿠르 준비도 세 번 했죠. 겨울은 저에게 휴식을 준다는 느낌보다 다른 것들을 기약하는, 저축하는 시간이었던 것 같아요. 항상 무언가를 위해 준비하며 기다려야 하는 두려움의 시간이 있는 듯한 느낌이에요. 이런 게 해결되면 겨울도 따뜻해지지 않을까요?
미래의 나 자신에게.
너는 돈에 대해서는 스트레스를 받지 않고 있으면 좋겠다. 내가 지금 너무 스트레스를 받고 있거든. 지금이라도 계좌 송금을 해줄 수 있으면 조금씩 벌어서 넘겨줄 것 같은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