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24 INTERVIEW | 조은송
"하지만 결국은
내가 선택한 거라는 생각이에요."
가끔은 외딴 섬에 사는 것 같은 느낌도 들어요.
친구들 만나러 가거나 할 때 보통 1시간 반 정도 걸리는데 이렇게 보면 엄청 멀다는 느낌은 아니에요.
그런데 이게 일이 돼서 출퇴근을 해야 하면 말이 좀 달라지죠. 인천에서 3개월에 걸쳐 장기 공연을 한 적이
있어요. 지하철을 타고 당산역까지 1시간 넘게 걸려서 간 다음 인천까지 차를 타고 40분을 더 들어갔었어요.
왕복까지 생각하면 매일매일 차에서 4시간을 보냈던 거예요. 공연은 금방 시간이 지나가곤 해서 공연시간보다 이동시간이 더 긴 느낌이었어요. 가끔은 지하철에 그냥 앉아 있다가도 눈물이 날 것 같은 기분이 되곤 했었죠.
그렇다고 자취한다는 얘기를 꺼내면
엄마가 많이 서운해하세요.
온 지 얼마나 됐다고 벌써 또 나갈 생각을 하냐고요. 제가 학교 다니는(다니며) 4년 정도 자취를 하는 동안
저 돌아오기만 기다리셨거든요. 또 4학년 때 강아지 한 마리를 데리고 왔어요. 길에서 우연히 마주친
아이였는데 버림받은 친구인 것 같아서 불쌍하고 안쓰럽다는 마음이 들었거든요. 데려와서 씻기고 며칠
보살피고 하다 보니까 정이 들어서 보낼 수가 없었어요. 어머니께서 너 나가면 강아지는 어떡하냐, 이런
얘기 하면서 잡으시면 나가고 싶은 마음에도 계속 발이 잡혀요.
어렸을 때 접할 수 있었던
가장 가까운 매체가 TV였던 것 같아요.
크면서 성격이 많이 밝아진 편이에요. 어렸을 때는 그렇게 밝은 성격이 아니었는데 그래서 그랬는지 어떤 감정을 느끼게 되면 그게 참 소중하게 느껴졌어요. TV에 나오는 사람을 보는 것 뿐인데 내가 그 사람을 보며 마음이 기뻐지고, 미워지고, 놀라움을 느끼거나 슬퍼서 갑자기 눈물이 뚝뚝 떨어지기도 했어요.
하지만 나의 감정을 보는 사람에게도
함께 느끼도록 하는 일에는 정말 엄청난 노력이 필요해요.
처음에는 좀 가볍게 나도 한 번 이런 걸 해보고 싶다는 마음으로 학교 다니면서 동아리도 들어가고 했던 거였거든요. 막상 하려니까 그게 생각보다 어려운 거예요. 아직도 어렵지만 내가 그 일을 분석하고 찾아가는 과정도 재미있더라고요. 감정을 분출하고 관객들과 소통하면서 느끼는 행복감과 카타르시스가 있었어요.
하면 할수록 연기에 점점 더 빠져들었고, 지금은 다른 일을 한다는 건 거의 생각도 할 수 없을 정도로
재미있게 하고 있습니다.
졸업하기 직전에 아는 분한테 연락을 받았어요.
공연 계획이 있는데 혹시 잠깐 와서 도와줄 수 있느냐고. 그때가 1월이었는데 저는 졸업을 하고 나면 1년 정도는 쉴 생각이었거든요. 그 분은 공연이 연 하반기에 있을 거라고 절 설득하셨죠. 9월을 목표로 계획중인 공연이니 3, 4월쯤 연습해서 한 번 올리고 그걸 다시 9월에 공연을 하자는 거예요. 계속 쉬다가 하반기에 바로 공연을 올리려면 너무 공백이 길어지니까요. 그래서 저로서도 좋다, 3월이나 4월에 공연을 하고 5월부터 8월까지는
나 자신을 충전하는 시간을 가질 수 있겠다 싶어 수락했죠.
하지만 실상은 졸업한 직후 2월부터 1년을 다 극단에 투입돼서 활동한 셈이 됐어요. 친구들은 졸업 직후에 학교라는 소속도 사라지고 공허함을 느끼거나 흔들리기도 하고 고민과 걱정이 많은 시기를 보냈다고 얘기해요.
저는 졸업 직후 1년을 너무 바쁘게 보내면서 그걸 느낄 새가 없었어요. 그러다 문득 이렇게 계속 지내는 게
맞나 하는 생각이 들었고, 극단 대표님께 정중하게 극단을 나가겠다고 말씀드렸어요. 너무 감사하고 배운 게
많지만 지금은 조금 더 다양한 시도를 해보고 싶습니다 하고요.
공허와 상실, 불안함과 탐색의
시간들은 이제 시작된 거였어요.
올해 초를 정말 힘들게 보냈어요. 남들보다 조금 늦게 고민과 걱정의 시기가 찾아온 거죠. 저는 힘들다고
축 쳐져 있는 걸 좋아하지는 않아서 막 열심히 살고, 운동도 하고, 학원도 찾아 다니고, 오디션도 알아보고
보러 다녔죠. 그런데 그러다 갑자기 다리를 다쳐버린 거예요. 좀 웃기지만 강아지 산책을 시키다가 갑자기
얘가 저를 팍 끌어서 그만 넘어졌어요. 집에는 택시를 타고 들어가서 강아지를 두고 병원에 갔는데 제가
발목에 이미 부러진 뼈가 하나가 있고, 남들한테 없는 뼈가 하나가 더 있었다고 하더라고요.
넘어질 때 인대가 늘어나면서 그 뼈들을 건드려서 지금 그렇게 아픈 거라는 거죠. 깁스를 하고 한두 달은
아무것도 못하고 지냈어요. 5, 6월쯤이어서 날이 한창 좋았는데 계속 집에만 있으니까 스스로 쓸모없는
사람이 된 것 같고 자괴감에 빠졌어요. 창문만 열면 보이는 사람들은 다들 즐겁고 행복해 보이는데
저는 집에서 혼자 ‘쭈르륵 쭈르륵’ 이렇게 울고 있으니까 뭐라도 해야겠다는 조바심이 생겼어요.
지금 돌이켜보면 우울은 얼른 다른 것으로
치환해내야 하는 것 같아요.
옛날에는 우울은 우울로 더 파고 들어서 해결해야 한다고 생각했었는데, 아무것도 하지 않을수록 무기력해지니까 더 우울해지기만 하더라고요. 냅다 뭐라도 해보자 하고 빠져나오기 시작했어요. 냅다 원데이 클래스를
들으러 가고, 냅다 영화를 한 편 보러 가고, 냅다 핸드폰으로 촬영 버튼을 눌러 아무 연기나 해보고요.
그러면서 집에 책상을 갖다 버렸어요. 벽 한쪽을 비우려고요. 영상을 찍어서 어디에든 올려보고 싶었어요.
책상을 갖다 버리고 집을 내가 더 연기하기에 좋은 환경으로 만들면서 우울감도 벗어났어요. 연기 학원에도
등록했고요. 원데이 클래스를 들으러 갔던 한 학원에서 현직 영화감독을 모셔서 여는 소수정예 클래스가
열린다며 들어 보라는 거였죠. 학원을 다니면서 생기는 오디션 기회들도 있었기 때문에 망설이지 않고
등록해서 다니기 시작했어요.
학원에서 저에게 요구하는 것들은 제가 느끼기에는
단순히 보여지는 이미지에 집중하도록 하는 방향이었어요.
너는 밝은 이미지가 어울려, 너는 키도 작고 얼굴 좀 둥글둥글하니까 다른 거 생각하지 말고 밝은 역할을 노려, 하는 식으로요. 시야가 편협해지기 시작했어요. 계속 한 방향으로만 초점을 맞추니까 그런 게 중요한 게 아니라는 생각을 하면서도 그것만 보게 되는 거예요.
연기는 4년 동안 이미 학교에서 배우고 나왔는데, 힘을 내보려고 등록한 학원에서 자꾸 제 안의 무언가가
꺾이는 느낌을 받았죠. 지금은 그 수업에서는 나와서 혼자 공부를 많이 하고 있고 다른 영상들도 많이 찾아보고 있어요. 학원도 다양한 학원들이 있어서 여기저기서 상담도 받아보고, 저한테 더 맞는 곳을 찾아보는 중이에요.
요즘은 유튜브나 인스타그램에
독백 연기 영상을 많이 올려보려고 노력중이에요.
모든 사람한테 공통되는 말이 아닐까 싶은데 꾸준하게 계속 하는 게 중요한 것 같아요. 이 분야를 놓으면 안 된다고 해야 할까요? (이 분야에서 멀어지지 않기 위해 늘 노력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그런데 오디션을 백 번 천 번을 봐도 안 됐어요.
오디션도 지원을 했을 때 서류에서 뽑혀야 볼 수 있는 거잖아요? 그 서류 넘어가는 것조차도 쉽지가 않았어요. 경력 때문일 수도 있다고 생각했지만 그것도 억울하죠. 나는 경력이 없어, 그런데 경력이 없다고 날 안 뽑으면 어디 가서 연기를 할 수 있지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연기를 너무 하고 싶은데 왜 기회가 안 올까, 그럼 나의
기회를 나 자신이 만들어야 되겠다. 유튜브나 인스타에 영상이나 사진 같은 걸 올려놓으면 혹시 이런 거 생각 있으세요? 관심 있으세요? 하면서 연락이 오는 경우가 있다고 해요. 영상은 이렇게 독백 연기하는 걸 찍어서
올리기도 하고요. 아니면 자기 브이로그 같은 걸 올리는 사람들도 있더라고요. 그냥 자기 연기하는 모습들,
일상을 찍어서 올리는. 요즘 SNL에 출연하시는 등, 매체에서 활발하게 연기 활동하시는 윤가이 배우님도
인스타그램과 유튜브에 이런 독백 영상을 꾸준히 올리셨어요.
누군가에게서 “아, 저 사람 연기 잘해.”,
“저 배우 감정 전달 진짜 좋아.”
이런 얘기들 듣는 사람들은 얼마나 기쁠까요?
전에는 유명해지지 않아도 된다고 생각했어요.
유명해지고 싶어서 연기를 하는 건가, 연기를 잘 하다 보면 유명해지게 되는 건가, 하면서 고민도 했어요.
시간이 지날수록 엄청 반짝 스타 같은 걸 바라보고 가는 건 아니어도 어디선가는 인정받아야 되는 일이라는
생각은 들어요. 뽑혀야 내 연기력을 보여줄 수도 있고, 또 결국 관객 앞에 서야 연기를 하는 거지 사실 제가
집에서 혼자 연기 영상을 이렇게 해서 올린다고 끝이 아니니까요.
기회를 잃고 헤매는 청춘들이 너무 많잖아요?
공연을 할 수 있는 기회, 아니면 촬영을 할 수 있는 기회를 찾다 보니 어느새 제 인스타그램의 알고리즘마저도 연기에 완전히 잠식당해 있어요. 한 번은 경기도청에서 진행하는 연극 프로그램 소식을 보게 됐는데 참여비가 있어요. 연기 교육을 받고 마지막에는 발표까지 하는 프로그램인데 참가비가 30만원이더라고요.
서울 예술인패스라는 걸 등록하면 300만원 가량의 창작지원금을 받을 수 있는 지원사업을 신청할 수 있다는 것도 알게 됐어요. 그런데 예술인패스 신청에만 17주 정도가 걸린대요. 저는 이걸 알고 바로 신청을 했는데도
이번 년도는 아무 지원도 받지 못했어요. 예술인을 위한 지원에 관련된 사업 자체도 계속 줄어드는 추세라고
하고요. 더 많은 사람들이 기회를 얻을 수 있도록 지원의 종류와 폭이 더 다양해졌으면 좋겠다는 생각이에요.
이번 달에 아르바이트로 백화점의
향수 코너 직원 일을 시작했어요.
작년에는 공연이 꾸준히 있었고 극단에서 수업을 나가는 것도 따로 해서 수입이 없지 않았거든요.
따로 뮤지컬 강사 일을 해서 버는 돈도 있었고요. 올해 들어서 그런 수업도 다 안 나가고 공연도 없고 하다 보니 아예 고정적인 수입이 있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일하는 곳 브랜드의 향수가 25가지가 있는데 본사에
가서 교육을 한 번 싹 받아요. 고객에게 설명을 할 수 있어야 하니까요. 어디서 이런 교육을 또 받아보겠어요? 은근히 재밌었어요. 처음에는 열심히 하려다 보니 더 힘든 부분도 있었는데 시간이 지나면서 힘이 빠지니까
오히려 말도 더 편하게 하게 돼서 친절하다는 평도 많이 받고 잘 팔기도 해요.
자취를 하는 것도 아니고 해서 사실
그렇게 많은 생활비를 필요로 하지 않아요.
교통비, 핸드폰 요금이나 보험료, 일상적으로 밥 사먹고 어디 카페 가서 커피 한 잔 하고 하는 돈만 있으면
되거든요. 지금 일하는 곳에서 시급이 다른 데보다 더 잘 나오고 식대도 있어서 제가 생활비로 계산해 놓은
돈을 제외하고도 적금을 조금씩 넣을 수 있는 정도가 됐어요. 언젠가 일보단 연기에 더 집중해야 할 때를 위해 계속 모으고 있어요.
공연할 때 관객들이 주는 에너지를
받게 되는 순간이 가장 힘을 줘요.
요즘 공연을 많이 하지 못하긴 했지만, 그런 순간들과 무대에 서는 것 자체가 너무 즐거워요.
저는 매체 연기의 경험이 없기 때문에 잘은 모르지만 분명 매체도 똑같을 거예요. 다만 기록되는 것과 기록할 수 없는 것의 차이는 있다고 생각해요. 공연도 촬영을 해놓는 경우는 있지만 실황성에 조금 더 중점을 두는 편이기에 그 순간 함께 존재하는 관객들에게 큰 에너지를 받게 되는 것 같고요. 매체를 위한 촬영은 제 연기를
더 섬세하고 디테일하게 관객에게 전달해주는 것이 큰 매력이라고 느꼈어요. 그리고 그것을 오래 함께 간직할 수 있다는 것도 멋진 일이라고 생각해요.
저는 이제 10% 정도 되지 않았을까 싶어요.
이제 시작이라고 계속 말씀드렸지만 대학에 다니면서 경험한 일들, 또 졸업하고 2년간 했던 활동들이라든지
모아서 생각해 보면 배우로서 빛났던 순간이 전혀 없었던 것 같지는 않아요. 또 그 순간들이 모이고 모여서
제가 그리는 모습으로 가는 단계들이 된다고 생각해요. 그래서 10% 정도 된 것 같아요.
앞으로는 무궁무진하니까.
안정감을 찾는다는 이유로 안주하고 싶지는 않아요.
50살이 돼서도 배우로서 계속 활동하는 사람이었으면 좋겠어요. 삶에서 어떤 안정감을 찾기 위해서도 계속
노력하겠지만 그걸 찾은 다음에는 “아싸!” 하면서 더 하고 싶어요. 얼마 전 한 친구가 왜 꼭 연기여야만 하냐고 묻더라고요. 직업은 사실 선택이 아니냐, 네가 누리려고 하는 어떤 행복의 목표는 배우로서나 또는 작가로서,
회사에 취직해서도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냐고요. 선뜻 답을 하기 어려워서 잠깐만 생각할 시간을 달라 했는데 아무리 시간을 갖고 생각해봐도 연기 없이 행복한 제 모습을 떠올릴 수는 없었어요. 제가 그리는 행복한 삶의 모습에는, 어느 정도의 안정적인 경제력을 가지고 내 가족과 그리고 사랑하는 사람들과 삶을 꾸려가는 그림을 그릴 때에도 연기를 하는 저의 모습은 꼭 함께가 돼요.
미래의 나 자신에게.
나는 기회를 얻기 위해 끊임없이 노력하고, 시도하고, 부딪히고, 좌절하고, 또 일어나는 과정을 계속 반복하고 있어. 그러니까 함부로 살지 말아. 나는 나에게 오는 모든 기회를 정말 귀하게 여기고 싶어. 지금 나에게 그 기회 하나하나가 너무 소중하거든. 만약 네가 이렇게 생각 안 하게 되면 진짜 재수없을 것 같아.